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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인물/대서양; 유럽, 아메리카, etc.

고대 그리스와 폴리스

by 소하리바 2021. 4. 24.

폴리스의 의미

폴리스는 도시국가라고 번역되고는 하지만 도시도, 국가도 아니었다. 폴리스는 그대로 '폴리스'라고 쓰는 것이 적절하다. 폴리스는 공동체가 생활하는 그 공간을 의미하기도 했고, 그 공동체 전체의 구성원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공공생활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키토는 폴리스를 '시민들의 사고와 성격을 형성하고 훈련시키는 적극적인 존재'이자, '정치적/문화적/도덕적인 모든 삶을 포함해 사람들의 공동의 삶 전체를 뜻한다'고 했다.

흔히들 아리스토텔레스의 'political animal'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번역하지만 이는 오역이다. 'political'은 '정치적인'이 아니라, '폴리스의'로, '인간은 폴리스 속에서 생활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가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스의 등장배경

기원전 12세기말 바다민족의 분파로 추정되는 도리아인의 남하로 미케네 문명이 몰락한 뒤 그리스 지역의 문화적 수준이 크게 쇠퇴했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겼을뿐만아니라 기근 등으로 인구도 급격히 감소하여 자급자족적인 가족 집단을 중심으로 한 평등한 사회문화를 겪으며 이전에는 팽창주의적이었던 그리스인의 세계관이 크게 변화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000년경 그리스인들은 문화적 교류를 재개했으며, 이에 따라 점차로 상업이 활성화되고 다시 계층이 분화되었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에게 어려움이 닥쳤던 기원전 1200년부터 기원전 800년경까지를 암흑 시대라 한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9세기 페니키아와 빈번히 교류하면서 알파벳 문자체계를 채택하고, 상선을 건조했다. 그리스 지역의 인구는 폭증했으며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공동체 사이에서 갈등도 발생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800년경부터 그리스 지역에 폴리스라는 작은 단위의 정치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복이나 흡수를 통해 인접한 공동체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을 두고 시노이키스모스라 했는데, 이는 그들의 말 그대로 '한데 모이기'라는 뜻이다.

왜 하필 폴리스였나

그리스인들이 왜 정치적 단위를 씨족보다는 크고 국가보다는 작은 폴리스로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시되고 있다. 일단 그리스 지역은 산악지형으로 서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기원전 8세기경 인구가 급증하면서 공동체 사이의 교류가 늘어나 연대가 유리한 공동체끼리 뭉치게 되었다고도 설명한다. 폴리스에서의 생활에 만족했기에 팽창에 대한 욕심도 없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폴리스의 구조

현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폴리스 아테네는 폴리스 중에서도 매우 큰 편에 속했다. 폴리스의 인구는 보통 시민 5천 명 정도로, 여기서의 시민은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을 뜻한다. 여기에 여성, 남아, 노예들까지 합하면 보통 총인구는 시민의 10배로, 5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아테네가 있었던 아티카 지방은 전성기에는 최고 35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으리라 추측된다.

폴리스는 도시와 농촌, 해안지대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크게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로 구성되었다. 아크로폴리스는 방어기지와 신전, 제단 등이 있는 언덕 위의 시설을 의미했으며 아고라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모이는 곳이었으나 점점 시장과 광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폴리스의 규모는 작아서 정치적 중심지에 하루면 갈 수 있었고, 정치, 종교, 예술, 제전 등 모든 생활이 공개된 장소에서 열렸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는 심각한 여성혐오 사회로 여성들은 이와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인류 역사의 모든 시기가 마찬가지지만, 심한 여성 억압으로 여성들 사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가 나올 수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를 헬라스로, 스스로를 헬라인이라 부르며 범그리스적 의식을 공유했다. 이들은 신탁을 받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방문하거나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에서 운동경기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이런 범그리스적 의식은 그리스 전체를 정치적으로 통일하진 못했다.

식민시

암흑시대를 벗어나 기원전 750년경 전후로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퍼져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세운 폴리스들을 식민시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이 생각하는 식민지의 의미가 아니라 이주의 개념이다. 기원전 500년경까지 계속된 식민시 개척으로 천여 개의 폴리스가 그리스, 이오니아, 지중해 남부, 시칠리아 등에 형성되었다. 식민시 생성의 원인으로는 상업 활성화와 인구 압력, 정치적 혼란 등이 제시된다. 척박한 환경으로 생산성이 낮았던 그리스인들은 자연스럽게 상업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시장 확대를 위해 식민시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또한 인구의 팽창으로 잦아진 정치적 분란에 연루된 사람들이 갈등을 피해 폴리스를 떠났다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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