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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인물/대서양; 유럽, 아메리카, etc.

[대서양 노예무역] #2 끈질기게 이어진 유럽의 수탈

by 소하리바 2021. 9. 1.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의 인적 자원을 수탈하면서 초국가적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노예제 폐지의 과정에서도 깊고 장기적인 경제적 상흔을 남겼다.

 

아프리카 지역의 인력 부족 초래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 인구 공백으로 인한 장기적인 경제적 침체를 불러왔다. 피케티에 따르면 1500년과 1900년 사이에 아프리카 노예는 총 20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3분의 2는 앤틸리스 제도와 아메리카로 이송되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에 따른 것이었다.

즉 유럽이 최소 약 1400만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을 아프리카 밖으로 ‘이송’하여 노예로 부렸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그만큼의 노동력을 아프리카가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예선 브룩스의 설계도. 아프리카 사람들은 짐짝처럼 쌓인 채 이송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죽고 극도로 건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세한 숫자를 차치하고서라도,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무역선에 실려가는 과정에서 대다수 사망했음에도 당시 서구 열강의 정착민들이 무역에서 살아남은 노예들을 부려 각종 플랜테이션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프리카가 잃은 노동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대강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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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해방의 대가로 아이티에게서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뜯어낸 프랑스의 만행

1791년 8월 23일, 아이티는 프랑스를 상대로 벌인 해방 전쟁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유네스코는 노예혁명으로 세운 최초의 독립국가인 아이티의 1791년 혁명을 기려 8월 23일을 노예제 폐지 기념일로 정했다. 
아이티는 그로부터 34년 후인 1825년에 온전한 독립을 쟁취한다.

아이티의 현재 모습.

그러나 아이티의 독립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다. 이 독립으로 인해 막대한 양의 국채를 떠안은 것이다. 피케티는, 19세기 법제도가 부채의 상속을 종료시키며 노예제를 폐지시켰지만, “세대를 건너 양도될 수 있는, 미래 세대에게 잠재적으로 무제한의 금융 부담을 지울 수 있는 부채 형태”인 국채가 존재했음을 지적한다. 아이티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샤를 10세는 프랑스 노예소유주들의 재산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티에 1억 5000만 금본위프랑을 요구했으며, 아이티는 프랑스의 군사적 위협과 우위로 인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국채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피케티는 이 1억 5000만 금본위프랑이라는 액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당시 프랑스 국민소득의 약 2%에 해당하며 오늘날 2018년 프랑스 국민소득에 동일한 비율로 적용해보면 400억 유로 이상이다. … 최근 연구들은 1억 5000만 금본위프랑이 1825년 아이티 국민소득의 300% 이상, 달리 말해 3년 이상의 생산에 해당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게다가 프랑스는 예금공탁금고(CDC)를 통해 노예소유주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기에 아이티로 하여금 금액 전부를 5년 내에 예금공탁금고에 납입하도록 요구했다. 아이티는 이 금액을 프랑스 민간은행들로부터 융자를 받아 마련해야 했으며, 융자를 받은 부채는 분할 상환해야 했다. 이는 협정에 명시된 내용이었다. 프랑스에 대한 국채가 다시 프랑스 민간은행에 대한 국채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노예소유주들은 상실한 노예라는 재산을 금융자산으로 신속하게 보상받았던 반면, 아이티는 원금을 갚기도 전에 프랑스 민간은행에 무한정 이자를 납입해야 했다. 아이티는 지진과 대화재 등의 재난을 겪으며 이자 지불에 대한 유예를 얻어냈지만 이는 부채를 청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호의였다.

결국 아이티에 대한 채권을 지닌 프랑스 은행들은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남은 채권을 미국에 양도했고, 아이티의 부채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소멸되었다. 아이티는 백 년이 넘도록 어마어마한 액수의 빚을 갚았으며, 이것은 자신들을 노예로 부렸던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서구 열강은 이러한 프랑스의 만행에도 입을 다물었다. 그들 역시 '대항해시대'의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 염운옥. 「리버풀 국제노예제박물관의 전시내러티브: 노예제 역사의 기억문화 만들기」 『史叢(사총)』 no. 88, 2016, pp. 175-209.
  • Diamond, Jared M. 『총, 균, 쇠』 김진준 역. 문학사상, 2005.
  • Piketty, Thomas. 『자본과 이데올로기』 안준범 역. 문학동네, 2020. 알라딘 eBook.
  • 박성춘. “과연 무엇이 ‘백인’인가...인종은 사회적으로 구성됐다” 2021년 5월 15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51423014971135. 2021년 5월 23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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