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문화, 인물/대서양; 유럽, 아메리카, etc.

[미국사/영국사] 필그림과 청교도

by 소하리바 2021. 10. 17.

목차

     

    필그림(Pilgrim)은 '순례자'라는 뜻으로, 1600년대 초반 잉글랜드를 떠나 지금의 미국인 뉴잉글랜드의 플리머스에 정착한 분리파 청교도를 의미한다.

    당시 잉글랜드국교회는 잉글랜드국교회를 따르지 않는 비순응자(non-conformist)들을 박해했다. 비순응자들은 목사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약 70여년 뒤인 1673년에는 첫 심사법(Test Act)이 발효되어 가톨릭교도와 국교회 반대자들을 법적으로 공직에 오르지 못하게 하기에이른다.

    부패한 잉글랜드국교회를 개혁하는 것을 넘어서 잉글랜드로부터 빠져나와 자신들의 신앙을 실행하며 살고 싶었던 분리파 청교도들은 1607년(1608년)에 상대적으로 관용적이었던 네덜란드로 향해 1609년 레이던에 정착해 레이던 잉글랜드 분리파 교회(English separatist church at Leiden)를 세웠다.[각주:1] 이들은 이곳에서 영국에서는 보장받지 못했던 종교적 관용은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언어적 장벽, 경제적 어려움, 육아와 교육에 대한 기대, 잉글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 등으로 인해 네덜란드가 아닌 또다른 새로운 땅으로 이주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정착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남아메리카의 가이아나와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가 후보지로 언급되었고, 1607년 제임스 1세 때 잉글랜드인들이 정착하여 세워진 제임스타운이 있던 버지니아가 최종 정착지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들이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버지니아가 아니라 매사추세츠였고 이곳은 영국의 플리머스의 이름을 따 똑같이 플리머스로 불리게 된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한 무리의 공동체가 바로 필그림(Pilgrims, 순례자)이다.

    정착 타임라인

    타임라인은 아래와 같다.

    유럽에서의 타임라인

    델프스하번-사우샘프턴-플리머스-대서양으로의 이동경로.

    1. 1620년 8월 1일, 청교도 집단은 네덜란드의 델프스하번에서 스피드웰(Speedwell)호를 타고 출발했다.
    2. 사우샘프턴에 도착하여 메이플라워호를 만났다.
    3. 1620년 8월 15일, 메이플라워(Mayflower)호와 함께 아메리카를 향해 떠났다.
    4. 스피드웰호에 문제가 발생해 플리머스에 정박했다. 스피드웰의 선원과 승객 중 일부가 메이플라워호에 옮겨 탔다.
    5. 1620년 9월 16일, 메이플라워호가 승객 102명을 태우고 뉴잉글랜드로 출발했다. 이들 중 35명만이 청교도였다.

    대서양-아메리카에서의 타임라인

    1. 1620년 11월 21일, 현재의 케이프코드 프로빈스타운의 항만에 도착했다.
    2. 겨울이 시작되어 일부는 배에 머무르고 일부는 플리머스에 자리를 잡았다. 겨울 동안 반 정도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을 체결했다. 41명이 서명했다.
    3. 1621년 3월, 배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플리머스로 이동해 뉴잉글랜드 최초의 식민지인 플리머스 식민지를 형성했다.

    필그림이라는 이름의 유래

    메이플라워호는 미국의 역사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선박이다. 여기에 탑승한 102명의 승객들을 처음으로 '필그림'이라고 부른 것은 영국 출신의 외교관이자 플리머스 식민지의 지도자였던 윌리엄 브래드퍼드가 집필한 책 『플리머스 건설(Of Plymouth Plantation)』이었다. 이 책에서 브래드퍼드는 이들을 순례자의 이미지로 묘사했는데 이후 나다니엘 모튼(Nathaniel Morton)과 코튼 매더(Cotton Mather)가 이 용어를 다시 사용하면서 대중화되었다.

    SMALL

    1630년대

    1629년에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가 건설되었다.

    1630년 4월 8일, 존 윈스럽(John Winthrop)이 이끄는 독립파 청교도 공동체가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사우샘프턴 남부에 위치한 와이트(Wight) 섬에서 아메리카를 향해 출발했다. 윈스럽은 이 중 알벨라(Arbella)호에 타고 있었고 그가 여기에서 한 선상 설교인 그리스도인 자비의 모범(A Model of Christian Charity)은 아직까지도 선민의식과 결부된 미국의 건국이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설교에서 아메리카의 초기 청교도 이주민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현이 바로 전 세계 사람들의 눈이 향한다는 ‘언덕 위의 도시(a city upon a hill)’이다. 이러한 초기 청교도 이주민의 선민의식은 다른 공동체 위에 군림하고자 하거나 다른 종교를 박해하는 우월감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기독교도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가까웠다.

    1630년에는 1000여명의 청교도 이민자들이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청교도 대이주(The Great Puritan Migration)[각주:2]은 영국 출신 이주민들이 미국의 뉴잉글랜드, 체사피크와 서인도제도 등에 대규모로 이주해온 시기를 일컫는 말로, 1630년부터 1643년까지 이주민 13,000~21,000명이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 정착했다.

     


    참고

    참고문헌

    • 박경수 (2017). [영국 종교개혁의 현장을 찾아 06] 잉글랜드를 넘어 뉴잉글랜드로: 퓨리턴에서 필그림까지. 기독교사상, 707, 54-70

    외부링크

    각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