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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인물/대서양; 유럽, 아메리카, etc.

[대서양 노예무역] #1 유럽은 어떻게 '세계'가 되었을까?

by 소하리바 2021. 8. 28.

‘대항해시대’는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대서양 삼각무역이라는 초국가적 사업을 탄생시켰다. 유럽인들은 싸구려 부가가치 상품을 아프리카로 실어나르고, 흑인 노예를 카리브 해역의 제도들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어나르고, 이곳에서 생산된 면화, 설탕, 담배, 카카오 등을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대서양 노예무역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었으며 비단 사업에 연관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서양 노예무역이 일으킨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은 21세기가 도래한 후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1년 전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인을 아메리카로 ‘이송’하고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수백 년 동안 이어질 인종적 계급격차를 만들어낸 대서양 노예무역이 궁극적으로 초래한 사건이다. 더불어 캐나다와 미국이라는 북아메리카 백인 국가의 존재, 자본주의의 부흥, 세계화된 기독교 등 ‘대항해시대’의 대서양 노예무역의 흔적은 우리 주위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유럽 세계의 확대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진출

현재 한국인이 ‘서구 국가’ 하면 쉽게 떠올리는 미국과 캐나다는 대다수가 백인으로 이뤄진 국가다. 그러나 북아메리카는 본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던 곳이었다.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고 아프리카인 노예를 부려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정착해야 했다.

그렇기에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뉴저지, 델라웨어, 플로리다 등 북미의 많은 지역에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을 비롯한 대규모의 유럽인 거주지가 건설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주했다.

지금의 버지니아 해변.

몰살된 아메리카 원주민들

반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는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한 16세기부터 급감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원주민 인구 수 급감의 주요인이 ‘균’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천연두, 흑사병, 홍역 등 여러 역병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외부 대륙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기에 유전자 풀도 넓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발전된 총포는 없었어도 수적으로 매우 우세했고 잦은 부족간 전쟁으로 전사가 많았음에도, 아메리카의 부족 국가들은 유럽인이 가지고 온 병원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아즈텍제국의 쇠망과 멕시코 원주민의 수적 급감에 대해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코르테스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 아즈텍인들은 더 이상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았고 몹시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도 스페인인이 유리했던 것은 바로 천연두 때문이다. 이 병은 1520년 스페인령 쿠바에서 감염된 한 노예와 더불어 멕시코에 도착했다. 그때 시작된 유행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즈텍족을 몰살시켰으며 그 속에는 쿠이틀라우악 아즈텍 황제도 포함되어 있었다.(300쪽)

1520년에 1500~2000만 명이었던 멕시코 원주민 인구는 1618년에 이르렀을 때 약 160만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러한 병원균에 의한 멸망은 잉카족과 미시시피강 유역 원주민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어떤 지역은 스페인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역병으로 원주민들이 몰살당해 텅 비어 버리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이런 지역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쉽게 차지했다. 

혼혈인의 증가

오늘날의 미국령과 캐나다령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구는 유럽인들이 도래하던 당시 500만~1000만 명 사이였다가 1900년 무렵에 50만 명 이하로 추락했다고 추산된다.

반면 유럽인과 혼혈인의 숫자는 점점 늘었다. 메스티소(Mestizo)와 삼보(Sambo) 인구는 1650년 무렵 총인구의 4분의 1, 1820년에는 3분의 1에서 절반 사이, 1920년에는 거의 3분의 2에 이르면서 꾸준히 증가했으며, 1900년 무렵엔 오늘날의 미국령과 캐나다령에서 유럽 출신 인구가 7000만 명을 넘겼다. 토착 원주민들이 말 그대로 소수자가 되어가는 동안 유럽인들은 정착과 혼혈 출산을 통해 세력을 불려나갔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 두 국가의 인구 센서스를 보면 유럽인의 북아메리카 진출의 증거는 더욱 명확하다. 2019년 미국 총인구에서 백인의 비율은 60.1%로, 과반이었다. 히스패닉과 라틴계를 합해서 18.5%인 것과 대조된다. 이마저도 백인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결과다. 캐나다의 인구 센서스로는 ‘유럽 출신(European origin)’ 인구를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기준 캐나다에서 유럽 출신 인구는 1968만 3천여 명으로, 총인구의 약 56%를 차지했다. 21세기 국가의 인구 비율에서도 대서양 노예무역의 흔적이 확인되는 것이다.

 

세계를 정복한 기독교

기독교는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대중적인 종교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기독교 신자는 약 23억 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31.2%에 달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 신자 수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각각 약 3260만 명, 6450만 명 증가했다.

기독교라는 유럽적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세계에 퍼진 것은 ‘대항해시대’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는 ‘신대륙’을 식민화하는 데에 기독교 선교를 중요 명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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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방식으로 퍼진 가톨릭

2013년, 바티칸은 전세계 로마가톨릭 신자를 약 12억 명으로 추산했다. 이 중 약 41.3%인 4억 8300만 명이 라틴아메리카 거주민이었다. 로마가톨릭이 대서양 너머 유럽에서 건너 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숫자다. 오히려 유럽의 신자는 전체 신자 중 23.7%로, 라틴아메리카의 신자 수보다 현저히 적었다.

세계의 가톨릭 인구

스페인은 ‘대항해시대’ 당시 엔꼬미엔다(Encomienda)라는 제도를 통해 식민지 개척자가 엔꼬멘데로(encomendero)의 자격으로 일정 지역의 인디오를 사역하고 선교하는 대신, 그 대가로 원주민으로부터 노동력을 제공받도록 하며 가톨릭을 전파했다.

농장에서 일하는 비백인 노동자 및 노예들.

그러나 이는 평화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으며 애초에 이 제도 자체가 백인이 종교를 빌미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잘 되지 않았던 영국의 개신교 전파

1660년, 영국의 찰스 2세는 해외 대농장에 관해 열린 의회에서 영국 영토의 모든 이들에게 신의 뜻을 가르치고 구원의 신비로움을 알도록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지시들은 각 식민지 정부에 전달되었다. 영국에게 이 과제가 중요했던 이유는 개신교 영국이 선교에 대한 열정에 있어서 가톨릭 스페인과 가톨릭 프랑스에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예를 대상으로 한 선교는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는데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침례교의 교회법과 영국법에 의하면 노예가 신자가 되면 그를 자유민으로 해방시켜야 했기에 노예소유주들은 선교사의 노예 세례를 거절하곤 했다. 1706년까지 6곳 이상의 식민지 입법부가 침례교 세례가 자유 여부와 무관하다는 규정을 명시한 법령을 통과시켰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노예소유주들은 노예들이 기독교를 접하면 반항적으로 변할까 우려하기도 했고, 애초에 노예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이해할 만큼 지적이지 못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또한 지극히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노예들에게 선교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다.

 

미국의 흑인 대상 개신교 전파

다만 미국에 와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노예 대상 선교가 진행된다. 미국 건국 직후 미국의 교회들은 ‘복음주의운동(evangelicalism)’을 전개했는데, 이 시기의 신앙부흥운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아르미니안주의에 입각했기 때문에 성경 지식이 많지 않아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다. 종교 집회에는 백인뿐만아니라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참석하여 종교 체험을 함께하였다.

흑인 노예들의 기독교적 가능성을 확인한 교회들은 1830년대 이후 남부 대농장의 노예들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미국 남부의 흑인 기독교도 수는 급증하여 1797년에는 감리교도 중 25%가 흑인이었으며 흑인 기독교도의 대다수는 메릴랜드 등 대농장 지역의 노예들이었다.

게다가 노예들의 기독교 개종은 노예제를 복음주의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노예소유주의 입장에서 볼 때, 아프리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기독교를 접하지 못한 채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을 아프리카인들이 노예의 신분으로나마 미국에서 살면서 기독교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이 섭리한 바였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주인의 눈을 피해 종교 회합을 가지며 영적 위로와 힘을 얻었으며, 성경 속 인물들로부터 구원의 희망을 엿보았다.

요컨대 대서양 노예무역으로부터 발생한 여러 역사적인 상황과 맥락들은 전세계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촉발제이자 촉매제였다.

 


  • 박은진. 「남북전쟁 전 미국의 아프리카계 노예들과 기독교」 『Asian Journal of African Studies』 no. 29, 2011, pp. 3-30.
  • Diamond, Jared M. 『총, 균, 쇠』 김진준 역. 문학사상, 2005.
  • Piketty, Thomas. 『자본과 이데올로기』 안준범 역. 문학동네, 2020. 알라딘 eBook.
  • Hackett, Conrad and David McClendon. “Christians remain world’s largest religious group, but they are declining in Europe.” Pew Research Center, 5 Apr. 2017,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7/04/05/christians-remain-worlds-largest-religious-group-but-they-are-declining-in-europe/. Accessed 24 May 2021.
  • “Census Profile, 2016 Census.” Statistics Canada, www12.statcan.gc.ca/census-recensement/2016/dp-pd/prof/details/page.cfm?Lang=E. Accessed 3 June 2021.
  • “How Many Roman Catholics Are There in the World?” BBC News, BBC, 14 Mar. 2013, www.bbc.com/news/world/21443313. 
  • “QuickFacts.” United States Census, 2020, www.census.gov/quickfacts/fact/table/US/RHI825219. accessed 3 Jun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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