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고대 세계의 사료에서 등장하는 유럽의 이름은 경우에 따라 제한적으로 정치적 혹은 문화적 함축성을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치적 혹은 문화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 로마제국 말기 동로마제국이 제국 전통의 상속자로 주장할 수 있게 되면서 제국의 서쪽은 자신의 정체성의 기반을 점점 더 라틴 기독교에 의존하게 됨
- 이때부터 유럽과 서방은 기독교 세계와 동의어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이후 중세에 유럽의 이름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함충성을 가지게 되는 계기 마련
고대 문헌에서 등장하는 유럽과 아시아
헤로도토스 <역사> (BC 5세기)
-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성품을 비교
- '유럽을 통과하여'라는 표현 등을 통해 유럽을 지리적 기호로 사용
- 유럽과 아시아라는 개념
- 그러나 유럽-아시아는 여전히 지리적 기호로 머물러 있음
히포크라테스 <공기, 물, 장소에 관해> (기원전 460년 – 기원전 370년)
- 유럽인-아시아인의 metality를 대비하는 관점을 발전시킴
- 유럽 개념이 타자와 구별된 유럽의식을 담아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글
유럽인 | 아시아인 |
→ 계절의 변화가 뚜렷해서 그렇다 |
→ 온화한 기후와 변함 없는 계절, 법제 때문이다 |
크세노폰 (기원전 430 년경 ~ 354년경)
<퀴로스의 교육>
유럽의 민족들은 지금까지도 독립적이고 서로 간에 얽매여 있지 않다.
아시아 민족들은 처음에는 유럽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누리고 있었으나 페르시아왕 퀴로스에 의해 예속되었다.
<회상>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당하는 민족이 유럽, 아시아, 리비아에 모두 존재한다.
그리스인 중에도 지배하는 집단과 지배당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이소크라테스 (기원전 436년~기원전 338년)
- 헬레네스-바르바로이의 대치구도
- 트로이인은 아시아를 위해 싸우고 그리스인은 유럽을 위해 싸웠다
-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인의 승리는 곧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첫 승리
- 그리스가 중심이 되어 아시아의 풍요를 유럽으로 가져와야 한다
- 유럽의 아시아 지배는 정당한 것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기원전 384년 ~ 322년)
- 기술과 지능은 부족하지만 자유가 있는 유럽 vs 기술과 지능은 있지만 기개와 자유가 결여되어 있는 아시아
- 생활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정신적인 성향과 정치 제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기후와 지리적 위치)
헬레네스 - 야만인(barbaroi)
☝️ 야만인을 정의하는 척도: 자유의 능력을 자연적으로 소유하고 있는가
☝️ 근현대의 인물인 몽테스키외, 헤겔 역시 자유의 척도에 따라 유럽과 아시아를 갈랐다
- 유럽인과 아시아인을 가르는 척도
- barbaroi는 원래 의성어였으며,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이방인을 지칭했던 용어였음 헤로도토스 역시 barbaroi를 이방인의 뜻으로 사용함
- 그리스인 > 야만인(비그리스인) > 아시아인
- "야만인에서의 왕정은 폭군에 유사한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입헌적이고 계속해서 세습된다"
- "그 이유는 야만인이 그리스인보다 본성적으로 더 굴종적(노예적)이기 때문이다."
- "그중에서도 아시아인들은 유럽인들보다 더 굴종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독재적(전제적) 통치를 용납한다."
유럽 개념이 구체적으로 정치화됨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
- 유럽의 범위를 그리스 북부로 제한했음
-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그리스를 위치시킴
-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에 대한 기대는 아마 마케도니아에 대한 기대였을 것
그리스는 양쪽의 지리적 중간이고 유럽의 장점(기개)와 아시아의 장점(지능)을 소유하고 있으나 정치적 통일성을 구비하지 못했다.
그리스가 정치적 통일성을 갖추면 다른 민족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지도자가 되고 야만인들에게는 주인이 되어라. 그리스인들은 친구와 친족처럼 조심스럽게 취급하고 야만인들은 식물과 동물처럼 취급하라.
고대 정치사에서 드러나는 유럽 개념
마케도니아 (BC 4세기)
필립 2세의 팽창: 유럽 개념의 정치적 전략화-
- 그리스와 소아시아까지만 포함하는 유럽
- 그리스인들을 대신해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몰아내던 시기에 태어난 딸에게 에우로페라는 이름을 지어줌
- 저술가들이 헬라스(그리스)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금지함
- 저술가들에게 에우로페 사용을 강요함
→ 그리스의 통일은 마케도니아의 이름이나 그리스의 이름으로는 불가능했음
→ 그리스의 통일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은 유럽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
알렉산더
-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그리스를 통치하는 제국의 관리자 안티파터에게 "유럽의 사령관" 칭호 부여
- 범민족적 대통일과 보존적 정복
- 민족들의 통일을 위해 정략결혼을 이용
- 식민도시 건설
- 피정복지의 풍습과 법을 그대로 허용
- 군대 통치권을 제외한 행정은 피정복민에게 위임
- 피정복민들의 신전 그대로 보존
- 유럽적인 것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려 들지 않았음
필립 2세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했지만, 세 대륙을 망라한 이 제국은 유럽의 제국이 되지는 못함.
→ 유럽은 세계제국의 '일부'
→ 유럽 외부까지 포함하는 기호sign가 될 수 없었음 (아시아나 아프리카로는 더 확장될 수 없는 기호로 정착됨)
유럽-비유럽의 도식들
야만(barbarism): 자유의 부재
- 야만은 통합과 배제를 가르는 언어이며 지배의 언어
- 16세기 들어 문명civilité이라는 개념이 독자적인 범주가 됨
- 야만인 개념의 변천
- 낯선 언어를 말하는 이방인
- 전제주의 하에 있는 노예
- 이교도
- 문명화되지 못한, 문명화되어야 할 미개인
몽테스키외
아시아 | 유럽 |
|
|
헤겔
동양 세계로부터 게르만 세계에 이르는 세계사의 발전을 자유의 발전 정도에 따라 서술
"동양은 단지 한 사람만이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에 반해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는 약간의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게르만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용문헌, 참고문헌
- 金奉哲. 2001. 「고대 그리스에서의 유럽의 형성 과정에 관한 역사적 분석」, 『역사학보』 제170집. 205-233.
- 원준호. 2003. 「에우로페(Europe) 신화와 고대 그리스에서의 유럽 개념의 전개」, 『정치사상연구』 제8집. 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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