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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인물/대서양; 유럽, 아메리카, etc.

유럽-미국 문학사조의 변화

by 소하리바 2022. 4. 7.

19세기 말 - 20세기 초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신분사회는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19세기 말 소비자본주의와 대도시의 출현으로 서구사회의 생활방식은 다시 한번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T. S.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로 그려낸, 정확한 시간에 통근하는 비슷한 외양의 군중의 모습은 현대의 획일화된 삶을 집약하는 상징이었다. 개인의 의식과 의지를 넘어서는 거대한 물리적 힘이 사회 전체를 조직하고 움직이면서 개인의 정체성 또한 정형화되고, 삶의 의미도 외적인 모습이나 행동보다는 감정과 의식으로 집중된다. 새로운 시간성 개념이 등장하여 객관적 시간보다 개인이 체험하는 인상으로서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고, 우리의 자아에 빙산의 아래쪽처럼 거대한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리를 인간 삶의 주요 부분으로 끌어올렸다.

-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정소영, 12쪽

울프가 즐겨 거론하는 '휘터커 연감'은 남성 주도의 사회를 우위에 둔 '사실들'을 사회적 위계에 따라 분류하고 설명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울프가 아널드 베넷과 존 골즈워디, H. G. 웰스를 비롯한 조지 시대 소설가들을 '물질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들이 여전히 외적 현실의 재현에 주로 힘을 쏟으며 주변 환경을 통해 한 인물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위대한 소설들이 주로 썼던 이러한 방식으로는 이제 인물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여전히 신분이나 가계, 사회라는 관계망이 중요했던 19세기에는 그런 요소가 인물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었지만, 20세기 초 대도시의 획일화된 생활방식에서 그런 외적 요소는 인물에 대해 거의 말해주는 바가 없다. 그 대신 개개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차원의 시간, 그리고 주변에서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막대한 인상[각주:1]들이 삶의 주요 부분을 이루게 된다.

-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정소영, 13-14쪽


  1. '인상(impression)'은 울프가 주요하게 다루는 요소들 중 하나다. 울프는 비평 에세이 〈현대 소설〉에서 인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블로그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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