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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by 소하리바 2022. 3. 22.

버지니아 울프는 '아델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이라는 이름으로 1882년 1월 25일 켄싱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줄리아 잭슨은 전남편 허버트 덕워스와 사별하고 울프의 아버지가 되는 레즐리 스티븐과 결혼했는데, 스티븐 역시 홀아비였기에 부부는 결혼하기 전부터 총 4명의 아이가 있었다. 결혼 후 네 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는데 이중 일곱째가 버지니아 울프였다.

울프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문학에 조예가 있는 집안 사람들이었다. 아버지 스티븐의 아버지 제임스 스티븐 경은 이름난 역사가였으며 형제 제임스 피츠제임스 스티븐 경은 뛰어난 법률가였다. 스티븐의 첫 아내는 빅토리아 시대 대표적인 문필가로 꼽히는 새커리(Thackeray)의 딸이었으며 두 번째 아내는 라파엘 전파의 준회원이면서 귀족들과 친히 교류했다. 스티븐 스스로도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이자 역사가였다. 울프는 <등대로>에서 자신의 부모를 모델로 램지 부부를 묘사하기도 했다.

울프의 아버지는 수많은 장서를 가지고 있었고 울프가 원하는 책을 읽도록 내버려두었다. 울프는 자유롭게 아버지의 책들을 읽었다. 이는 당대 여성들이 갈망하던 교육보다 좋은 것이었고 울프가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던 공립학교 교육이나 대학교육의 좋은 대체재가 되어 주었다. 물론 울프의 남자 형제들은 클리프톤과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했다.

1895년 어머니가 사망했다. 이 해에 울프는 심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부형제였던 조지 덕워스가 울프를 상대로 저질렀던 성폭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897년이 되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울프는 아버지가 놀랄 정도로 게걸스레 글을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아버지의 관계는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계속되는 가족과의 사별과 아버지의 무심함은 울프의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04년 아버지 스티븐이 병으로 죽고 울프는 또다시 정신적인 충격을 겪는다. 그는 회복 중에 형제자매들과 함께 블룸즈버리로 이사했다. 이후 이곳은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각주:1] 울프는 우울증과 거식증에 자주 시달렸고 1913년에는 자살 시도를 한다. 다행히도 한 차례 큰 광증이 지나간 후 정신건강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작가로서 울프의 경력은 1912년부터 1941년까지를 아우른다. 이 30년 동안 울프는 간헐적으로 찾아온 병증, 울프 자신이 중요하게 받아들였던 가족과 친지들의 요구, 문학비평과 사회비판에 대한 갈망 등으로 바빴다.

울프는 자신을 작가로 여겼지만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책을 출판한 적이 없었다. 이부형제 제럴드 덕워스가 1913년 울프의 <출항(The Voyage Out)>의 출판을 받아준 것이 처음이었다. 1917년에 그와 남편이 살던 리치먼드의 호가스 하우스에 호가스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차려 운영했는데 나중에 걸출한 기관이 되는 이 출판사는 설립 당시 버지니아 울프에게 일종의 치료나 마찬가지였다. 울프는 <낮과 밤>을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에 마무리지었고 덕워스가 그 다음해인 1919년에 이를 출판했다. 1919년은 울프가 로드멜에 위치한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700파운드에 사들인 해이기도 하다.

1922년에는 호가스 프레스에서 직접 <제이콥의 방>을 출판했으며, 이듬해에는 <댈러웨이 부인>을 쓰기 시작해 1924년에 마무리짓고 1925년에 출판하였다. 이때 이미 집필 중이었던 <등대로>는 1927년 출판되었다. 울프와 각별한 사이였던 여성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에 대한 헌사로서 씌어진 판타지 소설 <올랜도>는 여성이 되어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남성 올랜도를 그린 작품으로 1928년 10월에 대성공을 거둔다.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애완견(pet dog)에 대한 이야기인 <플러쉬(Flush)>도 대중에게 주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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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는 수많은 작품을 썼다. <The Common Reader> 시리즈와 <자기만의 방> 시리즈뿐만 아니라 많은 짧은 작품들을 쓰고 출판했다. 레너드 울프는 결혼생활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아내가 재능을 펼치고 경력을 쌓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블룸즈버리의 일원이자 울프의 친구였던 로저 프라이가 1934년 사망하자 울프는 프라이의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이 계획은 1936년까지 미뤄진다. 울프는 그해 말, 프라이의 전기 대신 <3기니>를 집필하기 시작해 2년 뒤인 1938년에 출판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프라이의 전기는 1940년 여름에 출판되었다.

가을에는 블룸즈버리의 많은 집들이 폭격으로 무너졌다. 몽크스 하우스로 돌아온 울프는 <막간(Between the Acts)>의 집필을 이어갔고, 1941년 2월에 마무리지었다. 그후 정신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그는 광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3월 28일 우즈강(River Ouse)에 투신하여 만59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 블룸즈버리 그룹에 속한 인물들로는 J. M. 케인스, E. M. 포어스터, 로저 프라이, (울프의 언니인 바네사와 결혼한) 클라이브 벨, (울프에게 프로포즈를 했던 적 있는) 리튼 스트래치, (이후 울프의 남편이 되는) 레너드 울프 등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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