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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젠더, 퀴어이론/에세이, 수필, 강연

[원문/현대국어해석] 나혜석 - 파리에서 본 것 느낀 것

by 소하리바 2021. 11. 2.

내가 巴里에 있을 적 일이다.
내가 파리에 있을 적 일이다.

主人집에서 친구 哲學博士를 主賓으로 여러 사람을 招待하였었다. 約 二時間 食事하난 동안에 主客間에 對話가 一分도 치지 안니 하엿다. 그러나 博士는 이금 청을 하다시피 얼진 사람갓치 마지 못하야 말對答을 하는 樣 갓햇다.
주인 집에서 친구 철학 박사를 주빈(主賓)으로 여러 사람을 초대했었다. 약 두 시간 식사하는 동안에 주객 간에 대화가 일 분도 끊기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박사는 이따금 딴청을 하다시피 얼빠진 사람 같이 마지 못하여 말대답을 하는 모양인 것 같았다.

食事 後 談話며 스로 愉快히 놀다가 演劇場 同行으로 主客이 다 한 電車를 타게 되었다.
식사 후 담화며 댄스로 유쾌하게 놀다가 연극장 동행으로 주객이 다 하나의 전차를 타게 되었다.

내 옆에 앉았던 主人 딸이 나에게
내 옆에 앉았던 주인 딸이 나에게

「여보, 저이가 왜 저럿소, 나는 저런 사람이 시러」
“여보, 저이가 왜 저렇소? 나는 저런 사람이 싫어.”

「누구 말이오 저 哲學博士 말이오」
“누구 말이오, 저 철학박사 말이오?”

「아직 박사난 되지 않았고 지금 박사 논문을 쓰는 中이라오」
“아직 박사는 되지 않았고 지금 박사 논문을 쓰는 중이라오.”

「그러니까 論文 쓸 生覺에 그렇지 안켓소」
“그러니까 논문 쓸 생각에 그렇지 않겠소?”

「그렇지만 사람이 왜 저래. 나는 실혀」
“그렇지만 사람이 왜 저래. 나는 싫어.”

옆에 안젓든 그의 형이
옆에 앉았던 그의 형이

「그러게 말이지, 왜 그래 사람이, 나도 슬혀」
“그러게 말이지, 왜 그래 사람이. 나도 싫어.”

「그런데 저이가 夫人이 없지 喪妻하였소. 未婚者요?」
“그런데 저이가 부인이 없지. 상처[각주:1]하였소, 아니면 미혼자요?”

나는 오늘 招待에 혼자 온 것을 무럿다.
나는 오늘 초대에 (박사가) 혼자 온 것에 대해 물었다.

「아니 그 사람은 極度의 獨身主義자라오」
“아니, 그 사람은 극도의 독신주의자라오.”

나는 마주 안즌 三十六, 七歲쯤 되여 보이는 그 사람을 자세히 보앗다. 그는 허리가 굽고 얼골이 누러케 고 눈이 멀거서 電車바닥만 굽어보고 무어슬 골몰히 生覺하고 있다.
나는 마주 앉은, 서른여섯, 서른일곱쯤 되어 보이는 그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허리가 굽고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이 멀개서 전차 바닥만 굽어보고 무엇을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도라와 자리에 누어서 가만히 生覺해 보았다.
나는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이 왜 그리 病身 갓고 못난이 갓고 말도 잘 못하고 쓸々스러워도 보이고 世上이 다 귀치안은 것 갓치 보이나 우리 同行이 다 그사람을 실탄다 나도 실타
그 사람이 왜 그리 병신 같고 못난이 같고 말도 잘 못하고 쓸쓸해도 보이고 세상이 다 귀찮은 것 같이 보이나. 우리 동행이 다 그 사람을 싫단다. 나도 싫다.

그 사람의 머리 속은 엇더할가. 東西洋 哲學史가 환할 거시오 人生觀이  定해 잇슬 거시다. 무어신지 모르나 論文 問題에 精神이 集中해 있을 거시오 라서 아는 거시 오작 만켓나 各國 方語로붓허 各 方面 科學이 머리 속에  차서 잇슬 거시다. 果然 學問 만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營養不足과 運動 不足으로 몸이 가늘고 血色이 없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실음을 밧는다. 나는 문듯 生覺낫다. 어느  어느 친구 한 사람이 「나는 모 ─ 든 女性이 실혀해요」하든 말을‥‥‥ 그러고 그 친구의 머리에도 저 哲學博士만치 學問이 잇구나 하고 瞥眼間 尊敬心이 생겼다.
그 사람의 머릿속은 어떠할까. 동서양 철학사가 환할 것이오, 인생관이 딱 정해져 있을 것이다. 무엇인지 모르나 논문 문제에 정신을 집중해 있을 것이오 따라서 아는 것이 오죽 많겠나. 각국 방어(方語)로부터 각 방면 과학이 머릿속에 꽉 차서 있을 것이다. 과연 학문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양부족과 운동부족으로 몸이 가늘고 혈색이 없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싫음을 받는다. 나는 문득 생각났다. 어느 때 어느 친구 한 사람이 “나는 모든 여성이 싫어해요”하던 말을... 그러고 그 친구의 머리에도 저 철학박사만치 학문이 있구나, 하고 별안간 존경심이 생겼다.

그러면 사람들은 엇던 사람을 조와하나 卽 사람은 엇던 사람이 되여야 하나 圓滿하여야 한다. 德스러워야 한다. 健康해야 하고 親切하여야 한다.  學識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누구든지 좋아하고 사람으로도 滿点이다. 그러나 이러케 具備하려면 天品이 그러하든지 그러치 안으면 生活條件이 그러하든지라야 될 것이요 수양으로는 되기 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 즉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원만하여야 한다. 덕스러워야 한다. 건강해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 또 학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누구든지 좋아하고 사람으로도 만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비하려면 천품[각주:2]이 그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생활조건이 그러하든지라야 될 것이오, 수양으로는 되기 좀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는 怜悧한 사람, 똑똑한 사람이 만타. 이러한 사람은 大槪 無識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經驗 많고 鍛鍊 많은 사람이다. 無識하면 대담할 수 잇다. 경험 많고 단련 많으면 능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학문 만흔 사람으로만은 똑똑할 수 없다. 왜 그러냐 하면 학문은 바다물과 갓다. 바다물을 한 동이 두 동이 퍼낸대야 바다와 물에난 아모 應함이 없을 것이다. 퍼낸 그 자리는 퍼내기가 무섭게 채워 잇다. 그러므로 학식을 만히 가질수록 지 못하게 된다. 勇氣를 잃는다. 疑惑을 품는다. 더구나 次代를 創作하려고 設頭하는 藝術家의 生涯랴.
세상에는 영리한 사람, 똑똑한 사람이 많다. 이러한 사람은 대개 무식한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경험 많고 단련 많은 사람이다. 무식하면 대담할 수 있다. 경험 많고 단련 많으면 능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학문 많은 사람으로만은 똑똑할 수 없다. 왜 그러냐 하면 학문은 바닷물과 같다. 바닷물을 한 동이 두 동이쯤 퍼낸다고 해 봐야 바다와 물에는 아무 응함이 없을 것이다. 퍼낸 그 자리는 퍼내기가 무섭게 채워져 있다. 그러므로 학식을 많이 가질수록 똑똑지 못하게 된다. 용기를 잃는다. 의혹을 품는다. 더구나 차대를 창작하려고 설두[각주:3]하는 예술가의 생애랴.

現代는 々한 世上이다. 卽 分明한 世上이다. 分明한 사람이 人物이오 事業家요 또 사람들이 조와한다. 社會가 複雜해지니 々하지 안코는 簡單히 要領을  수 없다. 自然 々하게 되고 々하여야만 하게 된다. 그러나 모 ─ 든 創作은 々지 못한 흐릿한 가운데서 나온다. 順境보다 逆境에서 나온다. 苦痛 煩悶 중에서 나온다. 順境에 處한 사람은 々할 수 있으나 逆境에 처한 사람은 々 할 수 업다.
현대는 똑똑한 세상이다. 즉 분명한 세상이다. 분명한 사람이 인물이오 사업가요 또 사람들이 좋아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니 똑똑하지 않고는 간단히 요령을 딸 수 없다. 자연히 똑똑하게 되고 똑똑하여야만 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창작은 똑똑지 못한 흐릿한 가운데서 나온다. 순경보다 역경에서 나온다. 고통, 번민 중에서 나온다. 순경에 처한 사람은 똑똑할 수 있으나 역경에 처한 사람은 똑똑할 수 없다.

巴里라면 누구나 다 華麗하고 奢侈한 곳으로 想像할 뿐 아니라 人情 風俗이 다 愛嬌 있고 산뜻하고 々한 곳으로 알지마는 國立圖書館에나 市立圖書館에를 가보라, 七, 八十된 대머리 老人들이 冊을 山같이 싸노코 보난 거슬. 그들은 집에 도라갈 때 自動車 소리에 작 놀나고 電車를 타면 終點지 가지 안나, 누가 말하면 東問西答을 아니 하나 그들을 누가 々하다 하랴. 그러나 現代文明이 모다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事實이야 누가 否認하랴. 何如間 學問이 잇든지 업든지 사람은 탁튼 맛이 잇서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硏究로 精神이 一에 集中하고 보면 사람이 自然 偏狹해지고 너그러워지지 못하난 거시 常例이다. 그러니까 사람이냐 學問이냐 하는 疑問이 생겼다.
파리라면 누구나 다 화려하고 사치한 곳으로 상상할 뿐만 아니라 인정(人情), 풍속이 다 애교 있고 산뜻하고 똑똑한 곳으로 알지마는 국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에 가보라. 칠, 팔십 된 대머리 노인들이 책을 산 같이 쌓아 놓고 보는 것을. 그들은 집에 돌아갈 때 자동차 소리에 깜짝 놀라고 전차를 차면 종점까지 가지를 않나, 누가 말하면 동문서답을 아니 하나, 그들을 누가 똑똑하다 하랴. 그러나 현대 문명이 뭐다,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사실을 누가 부인하랴. 하여간 학문이 있든지 없든지 사람은 탁 튼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연구로 정신이 일에 집중하고 보면 사람이 자연히 편협해지고 너그러워지지 못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니까 사람이냐 학문이냐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哲學博士는 지금 무엇을 思考해 노앗난지 새로이 궁금하다.
그 철학박사는 지금 무엇을 사고해 놓았는지 새로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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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喪妻. 아내의 상고(喪故)를 당(當)함. 즉 아내를 여읨. [본문으로]
  2. 天品. 타고난 기품. [본문으로]
  3. 設頭. 어떤 일에 남을 끌어넣으려고 먼저 일을 시작(始作)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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