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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요약, 정리

[요약] 로빈슨 크루소 표류 이전까지의 줄거리

by 소하리바 2021. 4. 11.

목차

    이 요약글은 로빈슨 크루소의 위치에 기반하여 작성하였다. 텍스트는 Penguin Classics 원문, 현대 영어로 재집필된 판, 그리고 을유세계문학전집 한국어 번역본을 참고하였다.

    요크 시 (영국)

    로빈슨 크루소는 1632년 요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지역에서 좋은 가문으로 이름난 크로이츠네가의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브레멘에서 이주해 온 전직 상인으로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중시한다. 크로이츠네라는 이름은 후에 크루소로 변하여 그들 자신도 자신들을 크루소라고 불렀고 이리하여 로빈슨 크루소의 이름은 '로빈슨 크루소'가 되었다. 크루소에겐 두 명의 형이 있었는데 큰형은 영국 보병대 중령으로서 됭케르크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둘째 형은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크루소를 법조인으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크루소에겐 역마살이 있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어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물론이고 친지들까지 반대했지만 크루소를 말릴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크루소를 불러서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은 아주 운이 없어서 팔자를 고치려는 사람들이거나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로서 유명해지려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며, 너는 한 쪽보다는 너무 높고 다른 쪽보다는 너무 낮다'라며, '중간 계층으로서의 삶은 아주 안락하고 편안하여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위치'라며 뜯어말렸다. 아버지는 심지어 죽은 첫째 이야기를 하며 울기까지 했다. 이에 크루소는 잠시나마 감명을 받아 얌전히 굴었으나 배를 타고 나가고자 하는 욕망에 어머니를 설득하려 했고 어머니 역시 반대했다.

    헐 시 (영국)

    그로부터 1년쯤 뒤, 아버지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정착했던 헐이라는 곳에 갔다가 런던으로 가는 배를 뱃삯 없이 태워 준다는 말에 그 길로 배를 타고 바다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 날이 1651년 9월 1일이다.

    험버 강 - 야머스 정박지 - 윈터튼 곶 - 야머스 (영국 동해안)

    배가 험버 강을 빠져나오자마자 풍랑이 일어 배가 흔들렸고, 처음으로 배를 타 본 크루소는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배가 널뛸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음을 마음에 새기며, 뭍에 닿으면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배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날이 잠잠해지고, 동료와 함께 잔뜩 술을 마시고서는 그 다짐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출항한 지 6일째 되는 날 야머스 정박지에 도착했으나 바람이 역풍이었으므로 더 내려가지 못하고 7-8일 동안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었다. 그러다가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어오다 그쳤는데, 그 뒤로 4-5일이 지나자 바람이 더욱 심하게 불어 배를 점검했다.

    그러나 8일째 되는 날 바람은 너무 거세져서 배가 뒤집어질 지경에 이르렀고 주변의 배들도 위험에 빠졌다. 선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버티지만 그날 밤 배에 물이 새기 시작해 선원들이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이 점점 차올랐고, 바로 앞에서 닻을 내리고 있던 소형 선박에 구조 요청을 보내어 구명 보트를 타고 탈출했다. 보트로 그 소형 선박에 닿는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기에 그저 뭍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배는 선원들이 보트를 타고 떠난 지 15분도 안 되어 가라앉기 시작했다. 보트에 탄 선원들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떠밀려 윈터튼 곶에 도달했다.

    윈터튼 곶의 등대를 지나 해안이 크로머로 굽어드는 곳에서 육지 쪽으로 접어들기 시작해 무사히 뭍에 상륙했고, 도보로 야머스까지 걸어가 조난자로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 몇몇 상인이나 선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비까지 챙겨주었다. 그러나 크루소는 자신이 헐로 돌아가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였다.

    야머스에 있는 동안 선장의 아들이 크루소에게 다가와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하도록 해준다. 크루소가 자신은 시험 삼아 여행을 해본 것이라고 말하자 선장은 시험 삼아 해본 출항이 이렇게 끝났다면 뱃길은 크루소의 길이 아니라고 충고해준다. 그러면서 어쩌다 배를 타게 된 것이냐 물어 크루소가 대답하자 선장은 크루소와 같이 못된 인간을 어쩌다 배에 들여놓게 된 것이냐며 천 파운드를 준대도 다시는 크루소와 배를 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크루소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크루소의 아버지의 말씀대로 패망의 길을 갈 것이라고 충고한다.

    여비를 가지고 있었던 크루소는 런던까지 육로 여행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지 바다로 나아갈지에 대해 갈등한다. 그는 이웃들이 자신을 비웃으리란 생각에 수치스러워서 선뜻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육지에 머물다 보니 바다에서 겪은 고초를 점점 잊어서는, 결국 바다로 나갈 마음을 먹게 된다.

    런던 - 기니 연안 - 런던 (영국, 북대서양, 아프리카 대륙)

    마침 런던에서 기니 연안에 다녀오며 제법 재미를 본 적이 있는 배의 선장을 만났고, 식사를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뱃삯도 내지 않고 고 기니 행 노예무역선을 탈 기회를 얻는다.

    크루소는 친지들로부터 40파운드를 끌어모아 선장의 지시대로 쇠붙이와 잡동사니를 사서 가져가 이 물건들을 노예로 바꾸어 되파는 장사를 통해(노예와 맞바꾸었다는 직접적인 묘사는 없다) 300파운드로 불렸다. 이 항해로 그는 선장으로부터 항해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니 무역상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를 도와주었던 선장은 귀항 후 얼마 뒤에 사망했다.

    런던 - 카나리아 제도 부근 - 살레 항 (영국, 북대서양, 모로코)

    크루소는 이전 항해 때 항해사였던 사람을 선장으로 하여 300파운드 중에서 200파운드는 선장의 과부에게 맡기고 남은 100파운드 미만을 가지고 같은 배로 출항했다.

    카나리아 제도와 아프리카 사이를 지나던 중 살레 항에서 온 터키 해적선에게 습격당한다. 맞서 싸우지만 3명이 죽고 8명이 다쳐 그대로 나포되어 살레 항으로 끌려간다. 크루소는 젊고 민첩해서 해적선 선장의 개인 노예가 되었다. (학자들은 이 '젊고 민첩하다'라는 언급이 노예 대상 남성 간 성착취를 암시한다고 보기도 함.)

    살레 항 (모로코)

    그는 그의 주인이 바다로 나갈 때 함께 따라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전함에 나포될 때 탈출하리라는 희망을 품어 보았지만 주인은 출항할 때 크루소를 육지에 두고 정원을 돌보는 등의 일을 하게 했으며 크루소가 배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이 항해에서 돌아온 후 정박한 배의 선실에서 배를 지키는 일을 할 때였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주인은 자금이 부족해 평소보다 오래 육지에 머물렀고, 대신 일주일에 두 번 또는 그 이상을 중형 보트를 나고 앞바다에 낚시를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마다 그는 크루소와 한 마레스코(스페인 출신 모로코인)에게 노를 젓게 했다. 크루소가 물고기를 잘 잡았기에 주인은 크루소로 하여금 자기 친척 하나와 그 마레스코, 그리고 크루소 이 셋을 보내 요리할 물고기를 낚아 오도록 시키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엔 맑았던 날씨가 급속도로 나빠져 안개 때문에 연안에서 2.4킬로미터도 나가지 않았는데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밤새 노를 저었는데 오히려 뭍에서 멀어져 다시 고생 끝에 귀환했다. 주인은 이 사건을 경고 삼아, 크루소가 탔던 영국 배에 딸린 대형 보트에 나침반과 식량을 갖춰 놓았다. 또 영국인 노예인 목수에게 보트 가운데에 선실을 짓도록 시켰는데 그 선실의 옥상에는 양고기 어깨살 돛이라고 불리는 돛의 돛대 받침대가 쇠고랑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선실 안에는 주인과 노예 두어 명이 누울 수 있는 자리와 식사용 탁자, 그리고 술평과 건빵, 쌀, 커피를 넣을 수납장이 있었다. ('주인과 노예 두어 명이 누울 수 있는 자리' 역시 노예 대상 성착취를 암시한다고 해석하기도 함.) 주인은 물고기를 잘 낚는 크루소를 항상 데리고 나가서 낚시를 했다. (이 부분 역시 성착취 암시.)

    어느 날은 그 동네 무어 인 유지들 몇 명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려고 전날부터 먹을 것을 평소보다 충실히 준비하도록 했다. 사냥총 세 자루에 쓸 화약과 탄환도 준비하라고 일렀다. 크루소는 주인의 지시대로 준비하고 기다렸지만 손님들에게 급한 일이 생겨 약속이 연기되자 주인은 크루소에게 평소처럼 남자 하나와 소년 하나를 데리고 나가 저녁식사에 먹을 물고기를 낚시해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크루소는 탈출을 위해 꾀를 내기 시작했다. 크루소는 무어 인 노예 몰리에게 주인 먹을 식량을 손댈 수 없으니 따로 먹을 것을 챙겨가자고, 그리고 새를 사냥해 먹자고 설득해서 그로 하여금 건빵 큰 광주리와 식수 세 단지, 화약 주머니, 탄알 주머니를 가져오게끔 했다. 그러고 자신은 술병 상자와 밀랍 큰 덩이, 실뭉치, 자귀, 톱, 망치를 챙겼다. 

    크루소와 몰리, 그리고 노예 소년인 쥬리는 항구 가까이에서 낚시를 했다. 크루소는 탈출 기회를 엿보았지만 스페인 해안까지 갈 수 있는 남풍 대신 북동풍이 불어왔기에 항로는 운에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물고기를 못 낚은 척을 해서 더 먼 바다까지 나가도록 하고 그곳에 정박했다. 크루소는 쥬리에게 키를 맡기고, 뭘 줍는 척 몰리를 바다에 밀어 빠뜨렸다. 몰리가 애원하자 크루소는 육지로 헤엄쳐 가지 않으면 쏘겠다고 협박해 그를 보내고는 쥬리에게는 충성하지 않으면 바다에 던져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쥬리는 충성을 맹세했다.

    아프리카 대륙 연안 - 바이 데 또도스 로스 싼또스 (북대서양, 브라질)

    크루소는 바람을 거슬러 지브롤터 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해가 지자 남쪽으로 배를 돌려 해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항해했다.

    다음날 오후 3시쯤 육지에 가까워졌을 때 살레 남쪽에서 240킬로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붙잡히는 게 두려워 내리지 않고 5일을 더 항해했다. 

    크루소 예상에 카보베르데 군도 또는 카나리아 제도 근처의 해안에 도달했다. 낮에는 야만인을 만날까 두려웠기에 밤에 연안의 작은 강 입구에 닻을 내려서 마실 물을 얻어보려고 했으나 밤에 짐승 소리가 들려 정박만 해놓고 기다렸다. 짐승 하나가 가까이 헤엄쳐 와서 총을 쏘자 그 소리에 짐승들이 더욱 시끄러워졌다. 날이 밝고 식수를 가지고 고민하니 쥬리가 자신이 가서 떠 오겠다고 했고, 크루소는 같이 가자고 대답한 뒤 쥬리에게 건빵과 술을 먹였다. 둘은 물단지와 총을 들고 배를 육지 가까이 대고는 해변에 올랐다. 토끼와 비슷한 짐승을 사냥해 잡아먹고 식수도 충당한 후 출항했다.

    해안을 따라 약 140킬로미터를 지났다.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피카로 추정되는 지형을 발견해 다가가고자 했으나 역풍이 불어 포기하고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 이후로 몇 번, 식수를 충당하기 위해 배를 댔다.

    어느 날은 큰 짐승을 발견해 배에 탄 채로 소총으로 쏘았고, 쥬리가 다가가서 숨통을 끊었다. 꼬박 하루 동안 가죽을 벗겼고 이후에 매트로 썼다.

    크루소는 카보베르데 곶 근처의 감비아나 세네갈 강에 다다라서 그곳을 지나는 유럽 배를 만나고자 했고 그 후로 10-12일 정도를 남쪽으로 항해하니 해안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를 가까이 몰자 다가온 나체의 흑인들에게 손짓으로 음식을 달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주민들이 배를 세우라고 손짓하고는 말린 고기와 곡식을 가져와 해안에 놓고 멀찍이 떨어졌으니 크루소와 쥬리가 그것을 배로 옮기자 다시 다가왔다. 보답을 해줄 수 없어 고맙다는 표시만 하던 찰나, 산에서 짐승이 내려와 해안에 다다라 저들끼리 놀기 시작했고 주민들이 혼비백산해 총으로 한 마리를 잡아 죽여 주었다. 주민들이 가죽을 벗겨내자 가죽을 받아 가졌고, 주민들이 음식을 더 가져다 주었고 빈 물단지를 보여주자 물도 주었다. 

    그 후로 약 11일 동안 항해하다가 카보베르데에 다다랐지만 카보베르데 군도로부터는 거리가 있어서 고민하던 중 쥬리가 배를 발견하고 알렸다. 크루소는 포르투갈 발 노예 무역선임을 확신하고 속도를 내어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따라잡을 수 없어 낙담하던 차에 배가 그들을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고 3시간 정도 후에 배에 다다랐다.

    크루소가 선장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으나 선장이 거절했고 오히려 크루소의 물건을 모두 잘 챙겨 사물함에 두고 목록까지 작성해서 주었으며 보트 값도 80 스페인 달러로 쳐주겠다고 했다. 선장이 쥬리를 사고 싶어해 크루소가 꺼림칙해하자 선장이 쥬리가 기독교로 개종한다면 10년 뒤에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여 크루소가 승낙한다.

    22일 후, 브라질의 바이 데 또도스 로스 싼또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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