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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젠더, 퀴어이론/논문, 저널, 비문학 출판물

[요약] 사이보그 선언문(도나 J. 해러웨이)

by 수스로 2021. 3. 31.

목차

     

     

    배경

         <사이보그 선언>은 1985년에 소셜리스트 리뷰에 발표된 논문이다. 당시의 정세는 레이건-대처 시대로 대표되는 신냉전체제가 격화된 시기였다. 소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자 레이건은 일명 스타워즈라는 엄청난 규모의 파괴적인 무기개발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그러한 정세 속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것이 <사이보그 선언>의 문제의식이다.

         러웨이의 정치적인 슬로건은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이보그를”이다. 이 선언은 발표 즉시 대단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테크노사이언스는 핵전쟁의 위협이라는 정세 속에서 마치 2차 대전 직후처럼 파괴의 대명사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페미니즘 진영에서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사이보그 선언>은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한긍정이자, 자연과 문화(혹은 인공)을 나누는 이분법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다.[1]

     

     

    집적회로 여성들을 위한 공통 언어라는 아이러니한

    사이보그란

    사이보그는 인공두뇌 유기체로,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며, 허구의 피조물이자 사회현실의 피조물이다. (p.18)

         >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다.

     

    여성 경험 개념의 확장

    사회 현실은 삶에서 겪는 사회관계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적 구성물이고 세상을 바꾸는 허구다. 국제 여성 운동은 ‘여성 경험’이라는 꼭 필요한 공동의 대상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자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경험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허구이자 사실이다. 해방은 억압 및 억압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 즉 상상적 이해의 구축에 달려있다. 사이보그는 허구이면서도삶 속 경험의 문제로, 20세기 후반에 여성 경험으로 간주될 있는 것의 기준을 바꾼다. 이 문제는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투쟁의 문제로, SF와 사회 현실을 갈라놓는 경계는 착시일 뿐이다. (p.18)

         > 사이보그는 ‘여성 경험’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킨다. 허구와 사실은 서로를 정의하고 완성시키는 개념이기에 페미니스트에게 ‘여성 경험’은 허구, 그리고 사실로 동시에 사용될 수 있다.

     

    사이보그의 탄생 배경

    현대의 생산 체제는 사이보그 식민화 작업을 꿈꾸는 듯 보이는데, … 현대의 전쟁은 command(명령)-control(통제)-communication(통신)-intelligence(첩보) 즉 C3I로 코드화된 광란의 사이보그 축제다. 나는 이러한 사이보그가 우리의 사회적 및 신체적 현실의 지도를 그리는 허구이자, 매우 생산적인 결합의 가능성 또한 제시하는 상상적 자원이라고 주장하려 한다.(p.19)

         > 사이보그 선언문의 탄생은 소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자 레이건이 가동시킨 대규모 무기개발 프로젝트, 스타워즈를 기점으로 가진다.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의 인종주의적, 남성지배적인 자본주의는 자연을 착취하는 사이보그 정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이보그는 이러한 기원이나 사이보그의 정치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20세기 후반의 키메라적인 존재들

    20세기 후반에 우리는 모두 키메라로, 이론과 공정을 통해 합성된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 곧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며, 정치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종주의적이고 남성 지배적인 자본주의의 전통, 진보의 전통, 자연을 문화 생산의 원재료로 전유하는 전통, 타자를 거울삼아 자아를 재생산하는 전통 등의 “서구”의 학문과 정치의 전통 속에서 유기체와 기계는 줄곧 경계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의 요충지는 생산, 재생산, 상상의 영토가 되어왔다. 이 글은 경계가 뒤섞일 때의 기쁨, 그리고 경계를구성할 때의 책임을 논한다. (p.19)

         > 인간-기계의 연결, 사물인터넷 등 신체가 확장되며 인간/동물, 인간/비인간 등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무수히 많은 사이보그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섹슈얼리티의 역사에서 출현한 적 없는 존재들이다.

     

    사이보그의 포스트젠더 가능성

    사이보그는 포스트젠더 세계의 피조물이다. 사이보그는 양성성, 오이디푸스 이성의 공생,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비롯하여 부분들을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권력을 최종적으로 전유하여 얻어지는 유기적 총체성을 향한 유혹과 거래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어떤 면에서 서구적 의미의 기원 설화가 없다. (중략) 사이보그는 추상적 개체화로 지배력을 확장한다는 ‘서구의’ 끔찍한 종말론적 목표, 마침내 모든 의존에서 벗어나 궁극적 자아, 다시 말해 우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p.20)

         > 사이보그는 유성생식을 벗어나기 때문에 남근적 어머니로 표상되는 기원 설화, 서구적 의미의 자연과의 동일시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오이디푸스적 표시와 무관하기에 이에서 벗어난 서사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사이보그의 기원과 그것에서의 분리

    사이보그는 유기체적 가족 모델을 따라 설계된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사이보그는 에덴동산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고, 꿈꿀 수도 없다. … 사이보그는 경건하지 않다. 사이보그는 조화로운 세계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바라지도 않는다. 사이보그는 전체론을 경계하지만, 연결을 필요로 한다. (중략) 사이보그의 큰 문제는 국가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사생아라는 점에 있다. (p.23)

         > 사이보그는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생아들은 자신의 기원과는 아무런 연결이 없기에 이것은 그리 나쁜 문제가 아니다. 되려 이것은 사이보그가 자신을 탄생시킨 목적인 스타워즈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 가지 주요 경계의 와해

    1. 인간과 동물의 경계

    언어, 도구사용, 사회적 행동 등 그 어떤 것도 인간과 동물을 완벽히 가르는 척도가 되지 못한다. 인간과 동물은 공진화하며 섞여 구분이 모호해졌다.

    2. 동물-인간(유기체)와 기계의 경계

    인간-기계의 탄생과 현대 의학의 발달로 자연과 인공, 정신과 육체, 자생적 발달과 외부로부터의 설계를 비롯한 수많은 차이들이 모호해졌다.

    3.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

    현대 물리에서의 양자론, 불확정성 원리는 물질성이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해러웨이는 소형화의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크루즈 미사일(소형화로 인해 감지 불가능) – 직접적인 피해. 소형화된 기계들 – 비가시적인 피해.

         > 세 가지 차원에서의 경계 붕괴가 일어났으며, 이에 따라 사이보그적 존재담론 구축이 필요해졌다.

     

    요약

    - 사이보그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다. 경계의 허물어짐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사이보그는 군사주의,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사생아로서 그의 기원을 전복시킬 가능성이 있다.

     

     

    금이 정체성들

    페미니즘에서 여성이라는 개념과 우리라는 연대

    오늘날에는 각 사람의 페미니즘을 한 개의 수식어를 붙여 명명하기 힘들다. 심지어 페미니즘이라는 명사를 어떤 상황과 무관하게 주장하기도 어렵다. 명명이 배제를 낳는다는 의식이 첨예하다. … ‘여성’됨에는 여성을 자연스레 묶는 것이 없다. 심지어 여성 ‘됨’과 같은 상태가 없으며, 그 자체가 성과 관련된 과학 담론 및 사회적 관습을 통해 구성된 매우 복합적인 범주다. … 그렇다면 ‘우리’라는 강력한 정치 신화를 정초하는 정체성은 무엇이며 이 집단에 속하게 만드는 동기는 무엇일까? 있을 법한 모든 단층선을 따라 페미니스트들이 고통스럽게 분열되면서, ‘여성’이라는 개념을 규정하기 어려워졌고 여성들 사이에 자행되는 각종 지배를 정당화하는 변명거리가 생겨났다. (p.31)

         > 사이보그는 정체성의 정치가 아닌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1세계 백인 여성이 배제적인 여성 호명을 만들어내도록 하였다.

     

    챌라 샌도벌의 대립 의식(oppositional consciousness)’ 모델

    인종, 성, 계급이라는 사회 범주에 안정적으로 소속되기를 거부했던 이들이 권력의 그물망을 읽어내던 기술로 탄생했다. 샌도벌은 누가 유색인 여성인지 판별하는 어떤 본질적 기준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녀는 이 집단이 부정의 의식적 전유를 통해 정의되었다고 언급한다. … ‘여성’이라는 범주는 모든 비-백인 여성을 부정했고, ‘흑인’이라는 범주는 흑인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비-흑인을 부정했다. … 이 정체성은 자연스러운 동일시에 입각한 행위 능력을 긍정할 수 없는 대신, 의식적인 연대나 결연, 정치적 친족관계만을 행위 능력의 근거로 긍정할 수 있는 의식적으로 구축된 공간을 그려낸다. (p.33)

         > 유색인종 여성은 사이보그 연대의 정치의 중요한 부분이다. 정체성의 정치와는 달리 샌도벌의 ‘대립 의식’은 타자성, 차이, 그리고 개인의 특성을 위한 공간을 준다. 이것은 ‘우리’를 구성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가령 흑인-여성-레즈비언-노동자는 어떤 안정적인 카테고리에도 부적합한 소수자 중의 소수자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소수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은 지나치게 약점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 다층적인 정체성은 어디에서도 배제되는 약점이라기보다는 어떤 때는 여성으로, 어떤 때는 흑인으로, 어떤 때는 노동자로, 또 어떤 때는 성소수자로 정치적 연대의 조건에 맞게 수많은 ‘우리’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순수한 소수성이 아니라 사이보그적인 경계의 허물어짐, 다층성이다.

     

    맥키넌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러웨이의 비판적 견해

    맥키넌은 래디컬 페미니즘이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분석 전략을 채택한 것이 필연이라고 주장한다. 계급 구조보다는 성/젠더,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관계, 즉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구성하고 전유하는 구조를 우선해서 보는 것이다. (p.39)

         > 해러웨이: 무엇이 여성의 경험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여성은 단순히 자신의 생산물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의미에서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잠재적 주체도 되지 못한다.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실존을 성적 전유에 빚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욕망에 의해 구성되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과 폭력적으로 분리되며 소외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 해러웨이는 마르크스주의와 맥키넌을 비판하는데, 특히 맥키넌이 주장한 성/젠더를 먼저 보고 그 다음 계급을 보자는 말을 비판한다. 맥키넌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그 자체가 전유, 통합, 총체화 경향을 보이는, 행위의 근거가 되는 서구 정체성 정초 이론의 풍자화’라고 말한다. 이것은 결국 극단적인 총체화로 이어져서 소외계층 여성의 발화를 무력화시킬 뿐이다.

         >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근원을 경제적인 불평등에서 본다. 그렇기에 가사노동의 사회화, 모든 여성의 임노동화 등을 해법으로 든다. 하지만 이는 성차별을 계급차별의 부차적 문제로 본다는 한계가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원초적인 모순으로 지적하고 생물학적인 성차를 근본적인 모순으로, 또는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1차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계급우선성과 래디컬 페미니즘의 성우선성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재생산노동을 긍정하고 이성애를 당연시하며, 가사노동과 재생산노동을 진정한 여성의 일로 간주한다.(전통적 백인 여성의 경험만을 분석한 결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여성들 사이의 문화적이고 경제적이고 인종적인 차이가 삭제되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요약

    - ‘여성’을 구성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성/젠더를 기반한 논의는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이론의 생산으로 이어져 실재를 간과하게 만든다.

    - 차이를 사유하는 것은 ‘우리’를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이라는 매개와 사이보그라는 은유는 여성의 연대를 강화시킨다.

     

     

    지배의 정보과학

    정보과학 네트워크로의 이동

    종래의 안락한 위계적 지배로부터 무섭고 새로운 지배의 정보과학 네트워크로의 이행. (p.45 )

         > 자연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인공이 잠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었고, 지배의 형태가 안락한 위계, 즉 확고한 지배 양상으로부터 새로운 지배의 정보과학 네트워크의 촘촘한 지능적 지배로 이동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에 따라 적절한 담론과 여성 투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적 의미의 섹슈얼리티에서 자유로운 사이보그

    오른편의 대상은 ‘자연적’인 것으로 코드화될 수 없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왼편의 대상 역시 자연적인 것으로 코드화할 수 없게 된다. … 이제 이념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신’만 죽은 것이 아니다. 여신또한 죽었다. 또는, 둘 모두가 미세전자공학과 생명과학기술 정치로 충만한 세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 이제, 특정한 성과 성 역할 개념이 유기체나 가족 같은 자연적 대상의 유기체적 속성이라는 유성 생식 이데올로기는 설득력을 잃는다. (p.46)

         > 사이보그는 인간적 의미의 섹슈얼리티와는 무관하게 자가복제, 무성생식 등의 미세전자공학과 생명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유성생식을 벗어나 재생산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말하는 성/젠더, 그리고 자연적 유성 생식이라는 것은 더이상 유효한 담론이 되지 못한다.

     

    과학기술의 사회관계

         > 이러한 배경에서 시스템 설계를 제약하는 ‘자연적 구조’가 와해되며,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생명공학으로 몸을 재가공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라는 것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과학기술과 사회관계가 둘 다 네트워크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코드를 전송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요약

    - 정보과학 네트워크로의 패러다임 이동이 일어났고, 페미니즘도 이동해야 할 때이다.

    - 미세전자공학과 생명과학은 여성이 재생산, 섹슈얼리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 자연적인 것, 유성 생식 이데올로기는 더이상 유효한 담론이 아니다.

     

     

    가정 밖의가사 경제

    신산업혁명 이후 시장에서 선호되는 여성

    ‘신산업혁명’은 섹슈얼리티와 민족성을 비롯해 세계 노동 계급을 새로운 형태로 생산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유동화되는 자본과 국제적 노동 분업의 출현은 새로운 집단의 등장보다 친숙한 집단의 약화와 관계가 깊다. 이런 발전은 젠더 중립적이지도 않고 인종 중립적이지도 않다. 선진 산업사회의 백인 남성은 영구적인 일자리 상실에 새로 노출된 집단인 반면, 일자리 회전에서 여성이 사라지는 비율은 남성이 사라지는 비율과 동일하지 않다.(p.53)

         > 신산업혁명 이후 시장에서 선호하는 것은 ‘가사 경제’를 하는 여성이다(신산업혁명은 노동의 종말이 아닌 노동의 여성화를 가져왔다.) 가사 경제는 주로 여성들이 행하는 전자제품 조립과 모든 노동의 ‘여성화’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노동의 ‘여성화’는 취약하게 만들어지는 것과도 같은데, 예비 노동력으로 착취되거나 노동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 여겨지는 것 등이 그렇다.

     

    빈곤의 여성화

         > 이로써 여성은 노동력의 대부분을 도맡게 되었으며, 여성이 생산한 것이든 남성이 생산한 것이든 ‘노동의 여성화’를 통해 경제 자체를 여성화시킨다. 이는 빈곤의 여성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가령 하이테크를 매개로 식량의 상품화가 계속되는 한편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자급 식량의 50퍼센트를 생산하지만, 실제로 이것에서 나오는 이윤에서는 배제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 이렇게 노동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는 전혀 다른 형태의 공장, 가정, 시장을 탄생시켰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전히 백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로만 사회를 분석하고 있었다.

     

    신산업혁명 이후 페미니스트 연대의 가능성

    사회주의-페미니즘 정치가 적절한 형태가 되려면 특권화된 직업군,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의 담론, 과정, 대상을 생산하는 과학기술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상정해야 한다.(p.61)

         > 반도체 생산라인의 제 3세계 유색인종 여성은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이자, 파괴적 무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을만드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또한 테크노사이언스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해서 그들을 옭아매던 가부장체계로부터 빠져나온 자들이기도 하다. 해러웨이가 되겠다고 선언한 사이보그는 사생아이기에 자신의 기원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이중적인 상황을동시에 볼 수 있기에 손쉬운 이원론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우주전쟁이 아닌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이다. 그는 페미니스트 사이보그다.[2]

     

    요약

    - 신산업혁명 이후 여성은 자본주의적이고 군사적인 경제시스템과 강하게 결속되었다.

    -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정 밖에서 저임금 노동을 해야 했다.

    - 여성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생겨나며 노동이 여성화되었다(취약해졌다).

     

     

    집적회로 속의 여성들

    과학기술에 의한 사회관계의 재구조화

         > 여러 선진 산업사회에서 여성의 위치가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통해 일부 재구조화되었다. 이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파괴하는데, 가령 과거에는 공장, 시장, 집 등을 구분하여 여성의 삶에 대해 말하였다면 오늘날 그것은 가사 경제와 감시 기술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가정, 시장, 직장, 국가, 학교, 병원 등의 공간을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네트워크화된 여성의 ‘집적회로’로 만들어준다. 집적회로란 과학기술의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친밀하게 재구성된 세상이다.

         > 이제는 네트워크와 코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무언가를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제 필요한 일은 지배의 정보과학 체제로 바뀐 권력의 그물망을 읽어내고, 그곳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일이다.

     

    과학기술의 사회관계가 제시하는 (남성)인간 되지 않기의 가능성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및 기계와의 융합을 통해 서구 로고스의 체현인 (남성)인간이 되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통해 불가피해진, 강력하고 금기시되는 융합에서 체험하는 쾌감에 주목하면 페미니즘 과학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p.69)

         > 페미니즘은 남성이 독점해버린 남성의 과학과 지식,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왔지만 ‘공통 언어’를 찾겠다는 페미니스트의 꿈은 남성들이 해온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과학은 그것과 달라야 하며, 인종, 젠더, 계급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통일성을 찾아야 한다.

     

     

    사이보그: 정치적 정체성의 신화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전략

    요약하자면 서구 전통에서는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왔다. 이 이원론 모두는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 -간단히 말해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라고 동원된 타자-로 이루어진 모든 이들을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 체계를 제공해왔다. … 지배되지 않는 주체이며, 타자의 섬김에 의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자아다. 미래를 쥐고 있으며 지배의 경험을 통해 자아의 자율성이 거짓임을 알려주는 이가 타자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막강해지며 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주체됨은 환상이며 그 때문에 타자와 함께 종말의 변증법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 (p.77)

         > 사이보그는 군사주의와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사생아이다. 그렇기에 편견을 갖고 있고, 분열되어있고, 머릿속의 고정관념을 지우기 어려운 우리들과 달리 사이보그는 자유롭다. 그들은 종교가 없고 자신의 기원을 알지 못하며 우리가 가지는 불안감에서 해방되어있는 존재들이다. 사이보그는 인간의 지배를 종식시킬 것이며, 인간-동물-기계 사이의 경계들을 파괴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이상 단일한 자아, 단일한 정체성으로는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읽어낼 수 없는 정보과학 네트워크의 시대인 지금, 남자, 여자, 인종, 종교가 없는 포스트젠더 세계는 여신이 아니라 타자성을 횡단하는 사이보그가 만들 수 있다.

     

     

    전체 요약

    1. 무엇이 여성의 경험인가? 각 페미니즘 진영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다층적인 타자성을 인정하는 사이보그 페미니즘을 제시하였다.

    2. 공진화, 인간-기계, 양자론 등으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잡종성’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다.

    3. 과학이 폭력적이라고, 자연을 도구화한다고, 남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복무한다고 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남성성에 맞서면 안 된다. 정보과학 네트워크로 이동하며 과학은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여성은 그것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과학은 사이보그 페미니즘으로 페미니즘 과학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해러웨이, 도나. (2019). 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대한 전복적 사유 (1판). 책세상.

    [1] 최유미. (2017.12.25). 선언의 사상가 다나 해러웨이. http://www.nomadist.org/s104/G6_Webzine_plan_translation/4090

    [2] 최유미. (2020).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1판). 도서출판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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