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3장 기계와 유기적 존재 사이의 칸트의 구분
구별 1 : 두 경우에서 작동하는 인과성의 차이에 기반(부품들은 위해서, 그리고 의해서 실존하는가?)
기계적 장치에서 한 부분은 다른 부분들을 위해서 실존할 뿐, 의해서 실존하지는 않는다. 가령 시계에서 톱니바퀴는 다른 톱니바퀴의 작용을 위해서 실존하지만, 그 부분에 의해서 실존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유기적 장치는 다른 부분들을 위해서 실존함과 동시에 의해서 실존한다. 각 부분은 다른 부분들에 의해서, 다른 부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전체를 위해서 실존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들을 생산하는 기관으로서 파악될 수 있다. 가령 세포는 조직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세포들과 연결됨과 동시에 분할을 통해 새로운 세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구별 2 : 부분과 전체의 실존을 주관하는 인과적 원리의 기원과 본성(외부의 agent가 필요한가?)
기계적 장치의 부분 및 부분의 형태를 생산하는 원인은 그것의 본성에 포함되어있지 않고 본성 바깥의 어떤 존재 안에 있다. 기계는 낯선 작동자(agent)의 개입을 요청하며, 그 작동자는 기계를 구상하고 부품을 배치함으로써 기계를 제작한다.
기계의 생산적 원인은 내재적이지 않다. 물질은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기체는 생산적 원인의 내재적이다.
유기체는 도면이나 밑그림 없이 생산이 진행된다. 기계는 구상한 자의 관념으로 우선 존재한 뒤, 실행을 통해 비로소 구축된다. 기계는 외부 원인의 도움 없이 조직될 수 없다.
구별 3 : 생산과 재생산
기계의 부분들은 전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생산도, 재생산도 할 수 없다. 기계의 자기 구축, 보존, 재생산은 늘 인간의 기술에 의존한다.
몸(유기체)은 그 자신이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이러한 이유에서 칸트는 존재가 유기적으로 조직되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한 자연적 목적으로 명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결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으로서 계속해서 그것 자체에 의해 생산되고, 스스로 자신을 재생산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나무는 종으로서 계속해서 유지된다.)
기계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제공되어야 하지만 유기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신의 영양을 끌어내어 흡수하고 자신의 고유한 산물로 만들어 스스로를 형성한다.
이러한 속성들은 부분을 넘어 전체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나무 각각의 이파리는 또 이파리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내어 나무 안에 있는 나무처럼 구성한다. 나무의 산물인 이파리는 다시 나무를 생산한다. 그리하여 부분은 전체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이 된다. 나무 안의 나무, 전체 안의 전체. 이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된 개체처럼 간주될 수 없다.
구별 4 : 스스로를 보존하고 회복할 능력
기계는 부분들의 대체, 비정상적인 것들의 교정, 상처 회복의 능력이 없다. 따라서 고장났을 때 스스로를 회복할 수 없다. 유기체는 어느 정도에서 결핍된 부분들을 재생산할 수 있다.
또한 유기체는 최초의 형성의 결함들을 다른 부분들의 개입을 통해 수정할 수 있다. 가령 9세 미만의 아이가 오른쪽 뇌의 마비로 실어증이 오면 뇌의 다른 지역들이 손상을 입은 지대를 대체하여 언어 기능을 보장한다.
“유기체 안에서보다 기계 안에서 더 큰 목적성이 있는데, 이는 목적성은 엄격하고 일의적이고 1가적이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결함에 대해 비정상성이 응답하기도 한다. 성장하며 괴물성과 기형이 나타나며, 이로써 새로운 유기체의 법칙을 확립한다. 하지만 기계는 할당된 과제들을 수행하며 결코 즉흥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결론
유기적 존재는 자신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고 보존하고 교정하고 수선하는 능력에 의해 기계와 구분된다. 기계는 오로지 운동적 힘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유기적 존재는 자기 안에 형성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
* 이때 칸트는 유기적 존재와 기계를 대립시키는 것도, 운동적 힘과 형성적 힘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도 아니다. 유기적 존재와 기계를 나누는 선은 ‘운동적 힘이라는 한 유형의 힘만을 누리는 몸’과 ‘두 힘을 모두 누리는 몸’들 사이에 그어진다.
2-4장 살아있는 몸과의 인과성
생기론
죽음의 저항하는 기능들 전체를 말한다. 살아 있는 몸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것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몸은 자기 안의 반동의 원리로 저항한다. 이로써 우리는 생명에 특수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기계장치로 환원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남아있는 질문은—생명적 현상의 이해불가능인데, 만약 생물학의 토대가 설명의 노력 바깥에 있다면,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기계론/목적성의 이율배반
살아있는 몸은 생명이 없는 몸과 동일한 물리-화학 법칙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살아있는 몸은 특별한 인과성의 산물이거나—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칸트의 한 명제의 언표(물질적인 것들의 모든 생산은 단순히 기계적인 법칙들에 의해 가능하다)와 반대명제의 언표(물질적인 것들의 어떤 생산은 그저 기계적 법칙들에 의해서는 가능하지 않다)에 의해 이 이분법이 무너진다.
살아있는 것과 생기가 없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존재하지 않고(cf. 바이러스) 따라서 살아있는 존재들과 유기적 분자들 사이에 근본적인 단절은 없다.
내부적 환경
살아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면, 이 연속성은 차이들을 은폐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몸은 외부 환경과도 관계를 갖지만 그 외에도 자신 안에 내부 환경이라는 것을 소유한다. 혈액처럼 체액과 분비물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이를 통해 살아 있는 것은 자신의 환경에서 해방되어 자신 안에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열기, 습기 등의 조건들을 유지할 수 있다.
내부 환경 개념은 생기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는 몸의 고유성을 설명한다. 생명의 독립성은 외부 환경과 싸우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고, 유기체의 복잡성에 따라 자연의 일반 법칙들로 부터 벗어나는, “유기적 환경이 특수화되고 이를테면 점점 더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분리되는”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부 환경 개념은 기계론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단순한 규제적 원리를 살아 있는 것 한가운데에서 나타나는 현실로 변형시킨다. 가령 혈액은 기관들을 위해서, 그리고 기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각 부분이 다른 부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의해서 만들어지는 칸트의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계획
유기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사라지고 동일한 구조에 따라 재형성되도록 예정되어있으며(손톱, 머리카락, 뼈) 몸을 재구성고 조직하는 질서에 대한 정보를 보존한다(DNA).
유기체는 세대에서 세대로 재생산되는 어떤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성을 지우기 어렵다. “살아있는 존재는 진정 어떤 계획(dessein)의 실행을 나타내지만, 그 어떤 지성도 그것을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어떤 의지도 그것을 선택한 적이 없다. 이 목표,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동일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살아있는 몸들은 자신을 재형성하려는 계획과 그것의 실현에 의해서도 특징지어진다.
의식적 삶을 향하여
그런데 여타 다른 생물들은 이런 계획에서 벗어난 다른 운명을 꿈꿀 수 없지만 인간은 생식을 거부할 수 있다. 요컨대 모성은 운명이 아니며, 인간의 몸은 생물학적 틀 너머로 확장되며 그 너머의 의미를 얻는다. 그렇다면 의식은 모든 살아 있는 몸에 속해 있는 것일까?
의식을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식물계는 선택이 예정되어있지 않기에 의식이 없다. 땅이 식물들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프랑시스 퐁주). 그렇다고 의식이 동물의 운동성에서 비롯되며 유랑하는 존재들에게 고유하다는 것은 아닌데, 가령 아메바 등의 점균류와 균류도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은 생명과 동일한 외연을 가지며, 의식은 “자발적 운동이 없는 곳에서는 잠들어 있고, 생명이 자유로운 활동으로 향할 때 고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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