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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젠더, 퀴어이론

재스비어 푸아 - 퀴어한 시간들, 퀴어한 배치들 요약문

by 소하리바 2024. 4. 9.

목차

     

    들어가며

    테러와의 전쟁은 모더니즘적 패러다임(목적론적 문명화, 오리엔탈리즘, 제노포비아, 군국화, 국경 불안) 및 포스트모더니즘적 분출(자살폭탄 공격자, 생체 측정 감시 전략, 새롭게 부상하는 육체, 과열된 대테러 대책)과 밀접하게 연관된 배치다. 몸, 욕망, 쾌락, 촉각, 리듬, 죽음, 처벌 등을 강조하는 우리의 탈정치적 현재-미래는 “정치의 진짜 임무”로 이해되는 제국의 메타이론과 “현실 정치”에 대해 퀴어 이론과 섹슈얼리티 연구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다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푸아에 따르면 국민주의, 애국심, 그리고 테러리즘이 인종화된 도착적 섹슈얼리티나 성별 위화감과 밀접하게 관계하며 형성되는 모습을 상세히 서술하기 위해 더욱 퀴어한 사유, 분석, 창의력, 표현이 필요하다.

    푸아는 테러리스트 육체를 검토하며, 퀴어함은 그것이 거부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증식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대테러 행위를 구성하는 담론이 본질적으로 성별화/인종화/성애화/국민화되었음을 보이고, 규범적 애국자 신체가 퀴어 테러리스트 육체성에 맞서고 토오가함으로써 응집되는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 예외주의의 퀴어 내러티브들

    퀴어 자유주의에 있어서 소비 주체로서의 계보와 사법 주체로서의 계보 모두 국민/국가nation의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푸아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퀴어 자유주의를 존재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이슬람혐오에 기대어 중동 섹슈얼리티를 구축하고 그 상대물로 미국의 퀴어 정체성을 위치시킴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미국의 퀴어 정체성을 예외화하는 성적 타자화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미국의 내셔널리즘이다. 푸아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퀴어 이론 작업이 교차성 분석에 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또는 바로 그것 때문에) 미국 국민국가의 규율적 이해관계를 재생산하는 지식을 향한 인식론적 의지를 심문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지금 성적 예외주의는 규범을 거스르는 (퀴어한) 신체를 통해 생산된다. 즉 퀴어는, 타자를 동성애혐오자이자 변태라고 몰아붙이고 제국주의적 중심을 “관용적(tolerant)”이면서도 성적/인종적/젠더적 규범상으로는 정상적인 곳으로 구축해내는 성적 근대화의 수사를 통해 미국의 국가적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예외적 성의 한 가지 형식으로 제시된다.

    퀴어성은 백인성을 퀴어적 규범으로 표현하고 생산하며 미국 제국주의의 팽장을 암묵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내셔널리즘적 외교 정책에 내재된 미국의 예외주의와 공모한다. 무바라크 다히르의 지적에 의하면 LGBTQ 아랍인이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내세워 전쟁을 정당화하는 단체도 있으며, 퀴어 좌파 조직이 유색인종을 주변화하는 것은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전쟁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거나 식민주의적이고 다문화주의적인 물신주의의 형태를 재현할 수 있다.

    푸아는 이러한 퀴어 예외주의가 모습을 드러내는 예시로 아부 그라이브 ‘성고문 스캔들’을 언급한다. 미군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포로들을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이 사건을 지적하는 퀴어 진영들은 무슬림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신들이 정통한 듯 말했다. 아랍, 무슬림, 이슬람, 중동을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공간’, ‘남성성에 대한 훼손을 극심한 명예훼손으로 여기는 공간’이라고 손쉽게 일컬음으로써, 성적 억압에 주목하고 규범적 남성성의 판본을 떠받치는 오리엔탈리즘적 관념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된다. 알파티하와 같은 퀴어 단체들은 아부 그라이브 성고문이 ‘무슬림 남성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논평했으며 여러 퀴어 진영은 이를 연대의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알파티하는 퀴어와 아랍의 교차점에 위치함으로써 무슬림 섹슈얼리티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인식틀의 진정성을 입증하도록 강요당했고, 미국의 성적 예외주의 서사를 증식시키고 있다. 무슬림 미국인 같은 다양한 미국인 주체가 처한 인식론적 조건의 확산은 국토 안보가 명하는 바이다. 무슬림을 동성애를 불허하는 성적 억압을 행하는 동질적 집단으로 개념화하고 ‘절도 있는 행실’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은 그러한 성적 속박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다. 오리엔트는 억압과 도착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소로, 서구식 정체성은 자유의 새로운 현장으로 정체화된다.

    퀴어 이론가 패트릭 무어는 아부 그라이브 성고문 사건을 논평하면서 ‘여성성’을 당연히 수치스러운 역할로 고정시켰고 아랍 사회를 낙후된 영역으로서의 행위로 추방시킨다. 아랍 사회에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무슬림이 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푸아는 무어가 이슬람 사회의 성적 억압을 무비판적이고 축어적으로 서술한 것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방성의 부족과 논의의 결락이 억압과 검열로 인한 위축된 성적 욕망 체제의 반영’이라는 푸코의 ‘억압 가설’을 불러일으키는데, 아부 그라이브 사건에서 미군 간수들의 성적인 과잉과 난폭함을 지우기 위해 아랍인 포로의 억압 상태가 강조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부 그라이브 사건에서 동성애혐오, 인종주의, 여성혐오를 보인 주체는 미군 간수들임에도 불구하고 중동은 성적으로 억압된 공간으로, 미국은 동성애혐오/인종주의/여성혐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성적 억압이 없는 공간으로 개념화되었다. 푸아는 이를 푸코의 ‘발화자의 이점’으로 설명한다. 성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러한 발화 행위를 통해 억압의 공간으로부터 풀려난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동성애와 무슬림을 상호배타적인 범주로 설정하고자 함으로써 퀴어성은 테러리스트 신체의 용인 불가한 형태와 비교되는 예외적인 것으로 미국의 성규범을 묘사한다. 또 퀴어 예외주의는 인종과 섹슈얼리티를 분리함으로써, 다시 말해 성적으로 억압받거나/받고 변태적이거나/인 테러리스트의 인종과, 백인이면서 성규범에 부합하는 퀴어 국민의 섹슈얼리티를 분리함으로써, 미국의 내셔널리즘을 봉합하고자 한다.

    테러리스트 신체(Terrorist Corporealities)

    호세 에스테반 무뇨즈는 공연예술가 버자이널 데이비스의 ‘테러리스트 드랙’에 대한 글에서 데이비스의 드랙 공연이 두 가지 층위에서 테러리스트적이라고 주장한다. (1) 미학 측위에서 데이비스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화려한 드랙을 거부하고, 백인 우월주의 자경단이나 흑인 복지 여왕 창녀와 같은 ‘지상 게릴라 표현 전략’을 사용한다. 이는 (2) ‘인종, 성별,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국가 내부의 테러들’을 암시한다. 9.11 이후로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는 인종적으로 매우 다른 심상을 불러일으키기에, 데이비스가 백인 자경단원으로 분해 테러행위를 미국 본토로 들여오는 것은 탁월한 일이다.

    무뇨즈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퀴어 존재와 테러 행위가 역사적으로 수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성애자는 스파이나, (매카시 시대에는) 공산주의자로도 여겨졌다. 그렇다면 테러리스트의 무엇이 퀴어하며 테러리스트의 신체에서 무엇이 퀴어한가? 불가해하고 히스테릭한 괴물인 테러리스트를 진압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탁월한 첩보 역량과 안보 체계뿐인 것으로 그려진다. 국가는 불쾌의 요소를 테러리스트 신체의 알-수-없음과 일치시키고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런 범주화를 통해 새로운 규범성과 예외주의를 정동적으로 생산해낸다. 퀴어성은 테러리스트를 명명하는 기획에 언제나 이미 자리 잡고 있다. 퀴어화된 주체와, 주체 안에 이미 존재하는 퀴어성이 지니는 대비적 차이는 있기(being)의 시간성과 항상 되기(becoming)의 시간성을 둘 다 고려하게 한다.

    여기서 푸아는 퀴어에는 본질도 정체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퀴어성이란 사방에서 나타나 우리에게로 다가온다는 사실에서 교차성 대신 배치(assemblage)를 제안한다. 교차성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정체성에 대한 인식, 명명, 안정화를 요구하는, 다양성을 관리하는 도구이자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외는 주문으로서 규율적 국가 장치와 공모하는 반면, (들뢰즈식) 배치는 또렷이 느껴지는 하나의 정체성 혹은 양식으로서의 퀴어성 대신, 우리가 사건, 공간, 그리고 육체에 내재하는 강도, 감정, 기운, 정동, 질감 등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들뢰즈식 배치는 흩어졌으면서도 상호 연루된 일련의 조직망으로서 공표와 해소, 인과관계와 결과를 한데 모은다. 교차성은 인종, 계급, 성별 등의 구성요소를 마치 구별 가능하고 서로 해체될 수 있는 부품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리 시대의 정치 지형이 내셔널리즘의 고도화된 죽음-기계로서의 측면, 즉 (음벰베에 의하자면) 죽음정치로 점철되어 있는 현실에서 배치는 국가 감시와 통제의 특징인 인종적 성적 분류의 고정성에 도전하고, 테러와의 전쟁이 구사하는 ‘우리 대 그들’의 이분법을 교란함으로써, 제국을 굳건히 하는 미국 예외주의의 서사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음벰베의 논의에서도 퀴어한 배치를 읽어낼 수 있다. 음벰베는 (서구의) 정치적 합리성의 개념에 의존하는 주권의 역사적 토대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보다 정확한 틀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생명권력에서 죽음정치(죽음의 권력에 대한 생명의 예속)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자살 폭탄 테러범은 에이즈에 감염된 동성애자처럼 항상 이미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성적으로 비뚤어진 존재로서 자신의 상태를 봉합한다. 음벰베는 또한 자살 폭탄 테러범의 퀴어적 존재화, 즉 "탄도"로서의 육체적 체험을 지적하는데, 자살 폭탄 테러범의 몸에 묶인 다이너마이트는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존재론적 정동을 통해 새로운 신체를 생성해낸다. 자살 폭탄 테러범의 신체는 탄도학적 차원에서 진짜로 신체-무기가 된다.

    자살 폭탄 테러범은 어떤 정보를 생산한다. 죽음과 되기(becoming)가 융합되면서, 죽음으로써만 자살 폭탄 테러범으로 생성되는 신체는 전진하는 시간을 뒤집어 버린다. 타인의 신체를 싣고 찢어발기면서 이 발사체로서의 신체는 (생성)되고 또 죽는다. 스피박은 자살 폭탄 테러가 처형하고 애도하는 대상의 편이 지정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발사체로서 편의 공간적 구분을 무너뜨리고, 퀴어하게 시간을 훼방 놓음을 보인다. 스피박에게 그것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전달할 길이 없어 결국 신체에 새긴 전언”을 실어나르는 신체다.

    그러나 음벰베의 논의에서도 자살 폭탄 테러범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로 그려진다. 여성 자살 폭탄 테러범의 신체는 남성 자살 폭탄 테러범을 설명할 때에는 불필요한 방식으로 논평되며, 여성 자살 폭탄 테러범의 행위가 지니는 정치적 의미 역시 성별화되거나 무화된다. 여성 자살 폭탄 테러범은 테러리즘이 가부장제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며 여성은 본질적으로 평화를 구현한다는 원론적인 명제를 파괴하지만, 전통적인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구성에서 쫓겨나거나 기피당하는 여성(종종 레즈비언이라는 혐의를 받는 여성)이 폭력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찰자들의 주장을 보면 이러한 근거는 다시금 재확인된다. 이러한 담론적, 신체적 정체성 표식은 교차성의 지속적인 역량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한계도 반영한다.

    저자는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짓는 프로젝트에는 항상 퀴어성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테러리스트는 변태, 일탈, 기형이라는 요소가 동시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 자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오히려 퀴어는 사방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자는 인종, 계급, 성별, 섹슈얼리티, 국가, 연령, 종교와 같은 구성 요소를 분해할 수 있는 분리 가능한 분석이라고 가정하는 교차적 정체성 모델과 달리, 교차성에서 배치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배치는 선형성, 일관성, 영속성에 반하여 시간, 공간, 신체를 합치고 소멸시키는 상호 결합된 힘을 가능케 한다. 배치는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을 단순히 공식적인 틀에 담아내는 구조 안에 차이를 가두는 대신 강렬함, 감정, 에너지, 정동, 질감에 조율할 수 있게 해준다. 퀴어를 시각적, 청각적, 판독 가능하거나 명백하게 드러나는 정체성 또는 양태로 대체하는 배치는 정체성의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 그리고 정체성이 구성되고 수행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성애규범은 코헨의 말처럼, 인종적/계급적 특권과도 관계하며, 테러리스트 신체를 도착적인 것으로 조명한다. 그러나 반-내셔널리즘적인 퀴어성이 동성애-이성애 경계를 가로질러 국가의 도착적 존재들을 되찾아온다. 푸아는 신체의 규범화 관행과 저항의 관행을 전면화하는 육체의 정동적 퀴어성에 주목함으로써 확장되는 퀴어성의 장/벡터/지형에 주목하기를 요청한다. 테러리스트 신체의 퀴어함을 받아들임으로써 무엇을 상상해낼 수 있는가?

    정동적 퀴어성(Affective Queerness)

    테러리스트 신체의 퀴어성을 암시하는 것은 그것이 유발하는 불안감이다. 터번과 턱수염이 금지되고 제거되는 것은 무슬림 테러리스트의 신체를 ‘보기에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신체를 재영토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테러리스트처럼 보이는 신체는 퀴어성의 정동이 갖는 판독불가능성과 비교불가능성을 암시할 수 있다. 브라이언 마수미를 인용하자면 논리상의 연결고리가 없는 것만 같은, 내용과 효과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정동의 효과를 증언한다.

    “구조를 만드는 시각 논리 바깥에다 의미를 놓고 역사 계기판으로서의 기억을 몰아내는” 촉각적 지식은 규범화 작용의 흔적으로서의 위험, 공포, 우울을 인종화된 테러리스트 닮은꼴 신체에 장착시킨다. 터번, 부르카 등의 테러리스트 닮은꼴 신체에 장착된 것들은 단순히 신체의 부속물이 아니라 언제나 그것을 장착한 신체 되기의 상태 또는 신체의 일부가 되기 중인 상태에 있다. 

    시크교도의 터번은 퀴어적인 정서와 촉각적 영역을 통해, 베일이 타자적 여성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 남성성을 획득하고 있다. 터번을 쓴 남성은 이제 결코 문명화될 수 없는 괴물의 공간과 역사에 서식하고 있다. 터번은 테러리스트를 표현하는 동시에 감추기도 한다. 터번의 다중성과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터번이라는 단일체는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교란시킨다. 시크교 남성들은 무슬림으로 오해를 받아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었다. 오인된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시크교 터번과 무슬림 터번의 시각적 차이에 대해 개방적이고 기꺼이 식별할 수 있다는 점, 진보적 교육이 표방하는 다문화주의의 이상은 차이 안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점 등의 전제에 기반한다. 오인된 정체성에 대한 초점은 터번의 정서적 경험보다 시각적 경험, 즉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적 형성을 찬양하고 두려움, 혐오,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경험을 선호한다. 촉각의 경제학은 인식론적 앎보다는 존재론적 앎을 강조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보다 촉감, 질감, 감각, 냄새, 느낌, 정서를 강조한다. 또한 터번 착용자는 대개 남성으로, 문화를 보호하고 전승하며 민족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여성적 부담을 진다. 머리카락, 기름, 천, 피부, 유기물과 비유기물의 융합이 터번을 신체의 퀴어적인 부분으로 만든다. 이러한 시각성, 정서, 여성화된 위치, 신체적 비유기성의 조합이 혐오 범죄의 실행에서 터번의 퀴어적 형상화를 설명한다.

    터번을 두른 테러리스트의 퀴어적 집합체는 남아시아 퀴어 디아스포라들 사이에서 테러리스트의 신체가 퀴어로 재생산되고 교차됨을 보인다. 남아시아 퀴어 디아스포라는 퀴어를 내셔널리즘적 충동이 없는 모범적 장소로 간주하는 (미국의) 모범적 소수자 예외주의, 즉 퀴어를 디아스포라의 가장 높은 범법적 잠재력을 모방하는 것으로 서술하는 예외주의의 형태를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페티시화된 데시 드랙퀸과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또는 무슬림 테러리스트 사이의 긴장과 중첩은 이러한 예외주의를 완화한다. 브라이언 키스 액셀은 "디아스포라 상상력"이라는 에세이에서 시크교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를 언급하며 "고국을 디아스포라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디아스포라를 고국을 만드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향을 장소라기보다는 정서적이고 시간적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신체 또는 육체적 이미지와 섹슈얼리티, 젠더, 폭력의 역사적 형성"을 조국의 장소만큼이나 깊고 동등하게 디아스포라적 상상력을 구성하는 것으로 위치시킴으로써, 악셀의 공식은 국민/국가의 아비투스와 그 지리적 좌표를 더욱 퀴어화하기 위해 생산적으로 재작업될 수 있다. 악셀에게 디아스포라는 감각, 진동, 속력, 피드백 루프, 반복적 주름과 감정을 통해 응집되며, 육체성과 정동성, 다중적이고 우발적인 시간성을 통해 합체된다. 퀴어 디아스포라는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재구성함으로써 고국의 공유를 넘어서거나 그와는 차별화되는 연결성을 설명한다.

    악셀은 아부 그라이브 수감자와 시크교 남성 암리트다리와 같은 고문당한 신체를 소환한다. 팔루스적 힘을 함의하는 터번과 성기와 항문은 벗겨내어지고 공격당하며 자긍심인 머리카락은 속박의 도구가 된다. 악셀의 디아시프로적 상상은 성폭력을 통해 구성된다. 이 폭력은 신체의 퀴어성을 세 가지 측면에서 확인시킨다는 점에서 수행적이다. (1) 그 같은 폭력 속에서 국가/문화의 규범적 재생산자인 여성에게 할당돼있던 기능이 남성 테러리스트 신체로 옮겨간다. (2) 이 신체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반국가적 섹슈얼리티의 퀴어 영역으로 내몰린다. (3)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신체가 이미 퀴어하고 따라서 고문당하는 신체는 퀴어하다.

    공간적으로는 국가의 안팎에 모두 위치하고 시간적으로는 언제나 국민/국가 되기 중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되지 않기 중인 퀴어 배치는, 순간적이고 덧없이 사라지며 심지어 새롭게 생성되는 상태에서조차 규범적인 정체성의 표지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남아시아 사회와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국가적, 지역적 기원으로부터 육체적 정동성으로의 이동, 즉 통합적인 고국으로서의 남아시아로부터 괴물-테러리스트-호모 배치물로의 이동은, 퀴어성을 정체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이해하는 관념을 걷어내고 퀴어 디아스포라 예외주의를 엄청나게 강화하고 확산시킴과 동시에 문제 삼는다. 테러리스트 배치가 점유한 퀴어성은 국가 안보의 감시 아래 놓인 도착성 즉 비예외성을 되찾아옴으로써 성적 예외주의에 반격을 가하며, 괴물성-근대성의 혼합으로서 운동 진영과 학계의 정치 진영을 교란시킨다. 이렇게 정보의 흐름, 힘의 강도, 신체, 일관된 정체성만이 아니라 퀴어 반정체성 서사까지 허무는 실천이 빚어내는 불혐화음으로서 테러리스트 배치는 전 지구적 LGBTIQ 운동의 상당 부분을 특징직는 푸코식 행위-정체성 연속체, 즉 정체성이라는 기둥을 진화된 서구 근대성의 형식으로 특권화하는 연속체를 완전히 우회한다. 그러나 배치는 저항의 공간과 순간을 기대할 수 없을 때에도 특권의 공모와 새로운 규범성의 생산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배치가 비예외성을 되찾아오는 것은 단지 부분적인 요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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